펜실베이니아 & 모논가헬라 스타일 라이 위스키의 역사 (Pennsylvania & Monongahela Style Rye Whiskey)
메릴랜드의 라이 위스키 이전에 미국 최초의 위스키 스타일이라고 알려진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또는 모논가헬라(Monongahela) 라이 위스키가 존재했다. 영국의 이주민들이 지금의 버지니아에 정착하여 제임스타운을 건설한 이래로 체서피크만과 그 지류를 따라 식민지가 확장되었다. 특히 연합 왕국에 속하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많은 사람들이 식민지 미국으로 이주해 왔는데, 이들은 고향의 위스키 맛을 재현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 나는 곡물과 본국의 증류 기술을 활용하여 독특한 스타일의 위스키를 탄생시켰다. 처음에는 주로 농사짓고 남은 잉여 곡물로 신중하게 만들곤 했으나, 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메릴랜드 상류와 펜실베이니아로 이주한 사람들은 거대한 땅을 개간하여 더 많은 양의 곡물로 위스키를 생산할 수 있었다.
특히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피츠버그까지 흐른 뒤 앨러게니 강과 합류하는 모논가헬라 강은 그 유역에 커다란 계곡을 형성했는데, 이곳으로 이주한 농부 겸 증류업자들이 재배한 호밀을 주 재료로 하여 보리를 섞어 그 지역의 이름을 딴 독특한 스타일의 라이 위스키를 생산했다. 약 4:1 비율로 구성된 매쉬를 신선한 효모만을 넣고 발효하고 3열 챔버 스틸(Triple-Chamber Still)에 증류했다고 전해진다. 3개의 팟 스틸을 수직으로 배열하고 서로 위에 쌓아 반연속 컬럼 스틸로 구성한 이 특이한 유형의 증류기는 컬럼 스틸보다 곡물에서 더 많은 풍미를 추출하고, 팟 스틸보다 증류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애용되었다. 물론 다른 유형의 증류기를 활용하는 업자들도 존재했다.
또한 이 모논가헬라 스타일 라이 위스키를 정의하는 다른 요인은 숙성 과정에 있었다. 당시 모논가헬라 지역의 대부분 창고들이 돌 또는 벽돌로 이루어졌는데, 그 안에는 보다 일관적인 품질 관리를 위해 더니지(Dunnage) 방식과 유사한 형태로 오크통이 배치되었다. 벽에는 뱀 모양의 파이프를 통해 뜨거운 증기를 이동시키면서 겨우내 창고 온도를 최대한 높게 유지시켜 오크와 위스키 간의 상호작용을 더욱 촉진시켰다. 이처럼 보다 현대적인 공정을 통해 생산된 모논가헬라 라이 위스키는 1851년, 멜빌의 모비딕에도 언급될 만큼 커다란 명성을 얻었다.
1919년, 볼스테드법(Volstead Act.) 제정으로 이듬해부터 전국적으로 금주법이 확산되자 수많은 위스키 증류소들이 폐쇄되었다. 켄터키의 여러 증류소들은 약용 위스키를 생산한다는 목적으로 금주법 기간에도 시설을 운영할 수 있었으나, 이미 쇠퇴해가고 있던 모논가헬라 라이 위스키는 금주법이 폐지된 후에도 부흥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소 지루한 버번 위스키로부터 벗어나고 새로운 스타일의 위스키를 찾기 시작하면서 라이 위스키가 다시 조명되었다. 역사적으로 모논가헬라 스타일 라이 위스키가 정확하게 규정되지 않았지만 펜실베이니아의 여러 크래프트 증류 업체들이 "Dad's Hat Rye", "Wigle Whiskey"와 같은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서도 이 스타일을 본따 "Old Overholt", "Rittenhouse"와 같은 헤리티지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