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cardí
18세기 후반, 지금의 아이티에 해당하는 프랑스령 생-도맹그(Saint-Domingue)는 설탕과 커피 플랜테이션 농업을 기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식민지 중 하나였다. 그 중심에는 노예 노동에 의존한 대규모 사탕수수 재배와 제당 시스템이 있었으며, 이 산업 구조는 생산과 증류의 산업화를 촉발했다. 당시에는 주로 당밀을 원료로 한 럼이 대규모로 생산되었다.
1791년에 시작된 노예 반란은 수년간의 전쟁 끝에 1804년 아이티 독립으로 이어졌고, 동시에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플랜테이션 농장이 파괴되거나 폐허로 변했고, 식민지 시절의 산업 구조는 근본적인 전환을 맞이했다. 독립 직후 해방된 사람들과 공동체는 붕괴된 사회 시스템과 자본 부족으로 인해 대형 플랜테이션을 재건하지 못했고, 대신 농지를 소규모로 분할하여 자급자족적이고 지역적 성격이 강한 농업으로 발전시켰다. 그 결과, 공장 기반의 대량 생산은 줄어들고 마을이나 가정을 중심으로 한 가내 수공업적 생산 형태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혁명 이후 플랜테이션 농업과 설탕 경제가 몰락한 아이티를 대신해, 카리브해의 설탕 중심지는 스페인령 쿠바로 이동했다. 쿠바에서는 여전히 노예제가 유지되었고, 이는 대규모 사탕수수·설탕 플랜테이션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설탕 산업의 기계화, 대규모 공장 건설, 철도의 도입은 자본의 집중과 방대한 노동 수요를 불러왔다. 설탕은 노동집약적이면서 계절에 따라 수확과 가공이 이뤄져야 했기 때문에, 대규모 강제노동은 곧 경제적 우위로 직결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세기 쿠바는 전 세계 설탕 공급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9세기, 파트로나토(Patronato)는 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 제국에서 왕실이 교회의 행정과 선교 활동을 통제하고 지원하는 제도인 파트로나토 레알(Patronato Real)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왕실은 성직자를 임명하고 선교 사업을 지원했으며, 교회의 토지와 재산을 관리하는 등 국가와 교회가 긴밀히 협력하는 체제를 유지했다. 특히 왕실은 교회가 식민지에서 확보한 토지와 재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19세기에 들어 식민지 독립운동 과정에서 반교권주의가 대두되면서 점차 그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1865년경 계몽사상의 확산과 유럽 내 여론의 변화로 아프리카 노예무역은 사실상 중단되기 시작했다. 1880년대에 이르러 스페인 당국은 파트로나토 규정을 점진적으로 폐지할 것을 제안했지만, 이는 실제로 전 노예에 대한 소유자의 노동 강제와 통제 권한을 장기간 보존해 주는 결과를 낳았다. 즉, 법적으로는 노예제가 폐지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해방 이후에도 종속적 상태가 이어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명목상 전통적 노예노동이 사라지면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발생했고, 쿠바의 플랜테이션은 이를 중국계 계약노동자, 스페인 출신 이민자 그리고 카리브 지역의 다양한 노동력으로 보완했다. 더불어 임금노동과 소작 형태의 이행적 노동체계가 정착되면서 인건비를 낮게 유지하고 플랜테이션의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쿠바의 설탕 산업은 다시 활기를 띠며 대규모 생산이 확대되었고, 그 결과 막대한 양의 당밀이 부산물로 발생하여 럼 생산에 필요한 원료 공급이 안정적으로 보장되었다. 이에 더해 스페인 당국은 침체되었던 럼 산업을 빠르게 부흥시키기 위해 품질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들을 적극 지원했다. 그중에는 후에 하바나 클럽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기업가 돈 호세 아레차발라 알다마(Don José Arechabala Aldama)가 있었고, 스페인 출신의 자수성가한 상인 파쿤도 바카디 마소(Facundo Bacardí Massó)도 있었다.
1830년, 스페인 출신의 파쿤도 형제가 새로운 식민지였던 쿠바의 산티아고로 이주했다. 일자리가 풍부했던 산티아고에서 형제는 금세 돈을 모아 잡화점을 열었고, 뒤이어 막내 동생 호세도 합류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뒤 시체스 출신의 지인과 함께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Facundo Bacardí y Compañía”라는 이름으로 사업체를 등록했다.
이후 두 번째 매장을 열었으나, 잇따른 지진으로 자식을 잃고 부부는 살아남은 두 아들과 함께 스페인으로 피난해야 했다. 파쿤도는 곧 쿠바로 돌아왔지만 가게는 이미 약탈당한 뒤였고, 그는 아내의 대모에게서 돈을 빌려 다시 가게를 열었다. 그러나 지속되는 지진, 콜레라로 인한 사회적 혼란 그리고 사탕무 재배 확산으로 설탕 경제가 침체하면서 결국 1855년 사업은 파산하고 말았다.

당시 쿠바의 럼 생산은 매우 조잡했는데, 이는 스페인 당국이 1796년까지 쿠바 내 럼 생산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설탕 정제의 부산물인 당밀은 대부분 미국 뉴잉글랜드 증류소로 수출되거나 버려졌으며, 규제가 풀린 이후에도 쿠바의 소규모 럼 생산품은 품질이 형편없었다.
1838년, 산티아고에서 상업용 럼 증류업자 중 한 명이었던 존 누네스가 작은 증류소를 설립했다. 이 무렵 프랑스계 증류업자이자 제과업자였던 호세 레온 부테이예가 파쿤도의 아내로부터 산티아고 항구 인근의 집을 임대했다. 이 집은 원래 파쿤도가 아내의 대모로부터 상속받은 부동산이었고, 그는 임대료 일부를 부테이예의 증류기를 공동 사용하는 방식으로 정산했다. 두 사람은 발효와 증류 실험을 거듭하며 최고 품질의 럼을 만들기 위한 협력을 시작했고, 이렇게 탄생한 소량의 럼은 파쿤도의 형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무표시로 판매되었다. 점차 이 술은 "Bacardí"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862년, 두 사람은 과거 산티아고 최초의 상업용 럼 증류소를 운영했던 윌리엄 누네스로부터 증류소를 매입하고, 새로 구입한 구리·주철 증류기를 설치해 본격적인 럼 생산을 시작했다. 같은 해 또 다른 증류소를 인수해 “Bacardí Bouteiller y Compañía”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들은 빠른 발효를 가능케 하는 천연 효모인 라 레바두라 바카디(La Levadura Bacardí)를 분리해 독자적 균주를 확보했고, 이를 통해 오염이 적고 알코올 함량이 높은 매쉬를 생산했다. 결과적으로 일관된 풍미를 지닌 가볍고 부드러운 라이트 럼이 탄생했다.
파쿤도는 한층 정제된 럼을 만들기 위해 두 가지 서로 다른 매쉬를 사용했다. 하나는 미네랄 함량이 높고 풍미가 강한 아구아르디엔테(Aguardiente), 다른 하나는 보다 섬세하고 정제된 풍미를 지닌 레데스틸라도(Redestilado)였다. 또한 숯 여과 방식을 도입해 럼을 부드럽게 만들고 동시에 살균 효과를 얻었다. 그의 생산 방식은 이후 쿠바 럼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02년 쿠바가 독립해 공화국이 수립되자, 미국과의 통상·관세 협정을 통해 미국 시장 접근성이 높아졌다. 이는 미국 자본의 대거 유입으로 이어졌고, 중앙공장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플랜테이션 체제가 확대되었다. 설탕 붐이 일면서 쿠바는 세계 설탕 공급의 핵심지가 되었고, 파쿤도의 럼 사업도 크게 성장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는 쿠바 독립운동에도 많은 자금을 지원했으며, 한때 쿠바 의원으로도 활동했으나 미국 정부의 정치 개입으로 사임하고 가업 경영에 전념했다. 1922년, 바카디 가문은 산티아고 증류소의 확장과 개보수를 완료해 생산 능력을 크게 늘렸고, 직후 돈 파쿤도는 세상을 떠나 많은 이들의 애도를 받았다.

1930년, 돈 파쿤도의 사위 엔리케 슈에그(Enrique Schueg)가 바카디의 3대 회장에 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바카디 럼 수요가 급증하면서 회사는 1931년 멕시코, 1936년 푸에르토리코에 대규모 증류소를 설립해 공급망을 다각화했고, 바카디의 럼을 적극적으로 마케팅하여 국제적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특히 미국 금주법 해제 이후, 바카디는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서 생산을 시작하면서 미국 시장에 무관세로 럼을 공급할 수 있었다. 1944년에는 뉴욕 맨해튼에 “Bacardi Imports Inc.”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미국 시장 확장에 나섰다. 이 무렵 바카디의 성공을 지켜본 “José Arechabala S.A”는 하바나 클럽(Havana Club)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거대한 미국 시장을 겨냥했다.
하바나 클럽(Havana Club) & 쿠바 럼(Cuban Rum)
Cuban Rum & Havana Club 15세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 섬은 쿠바 총독령이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Virreinato de Nueva España)과 쿠바 도독령으로
labas24.tistory.com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 혁명이 일어나자 바카디는 반군을 지원했다. 그러나 혁명 세력이 승리하고 공산주의 체제로 전환되면서 쿠바 정부는 산업 시설을 대대적으로 국유화하기 시작했고, 럼 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많은 증류소와 그 가족들은 보상 없이 재산을 몰수당한 채 스페인과 미국으로 강제 이주되었으며, 쿠바에 남은 일부 구성원은 투옥되기도 했다.
바카디는 이미 공산화 이전 독재 정권의 개입과 부패를 우려해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당시 CEO였던 호세 페핀 보슈(José Pepín Bosch)는 1955 ~ 1957년 사이 “Compañía Ron Bacardí S.A.”의 자산을 바하마로 이전해 상표권과 독점 제조법을 쿠바 밖으로 안전하게 보관했다. 이 조치는 국유화 바람 속에서도 바카디가 럼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결정적 묘안이었다.
1960년대 초중반, 바카디는 가족 소유·관리 기반의 국제 법인 구조를 강화했고 1965년에는 버뮤다 해밀턴에 글로벌 본사를 공식 설립했다. 쿠바 내 생산 시설을 몰수당한 이후에도 푸에르토리코 카타뇨의 대규모 증류소인 럼의 대성당(Cathedral of Rum)과 멕시코, 인도 등지로 생산을 이전·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1966년부터 일찍이 럼 산업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쿠바의 공산정부는 전 세계 약 80개국에 하바나 클럽의 상표권을 등록했으며,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 시장을 중심으로 무역하기 시작했다. 상표권은 여전히 아레차발라 가족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쿠바로의 입국이 불허되어 면허를 갱신하지 못해 1976년 만료되었다.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은 하바나 클럽을 정부가 인수하여 국영 기업인 "Cubaexport"으로 편입해 수출 브랜드로 활용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는 국가적인 총력 사업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91년 소련과 동구권 붕괴로 주요 수출시장이 무너지자 쿠바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1993년 프랑스 주류 대기업 "Pernod Ricard"와 국영 기업 "Corporación Cuba Ron"이 합작 투자 계약을 맺고, 페르노리카는 유통·판매·마케팅을, 쿠바는 생산을 담당하게 된다.

분쟁은 1990년대 중반, 아레차발라 가문이 바카디와 합의해 미국 내 판매 권리를 넘기면서 시작되었다. 1998년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바카디 법(Bacardi Act)은 쿠바 혁명 후 몰수된 상표권을 원 소유주의 동의 없이 해외에서 인정·갱신할 수 없도록 했다. 이로 인해 페르노리카가 아레차발라 가문과 합의하려던 시도는 무산되었고, 바카디는 오히려 아레차발라 가문이 제공한 제조법을 활용해 바하마에서 하바나 클럽이라는 이름의 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제품은 처음에는 미국 일부 주에서만 판매되었지만 2006년 이후 생산이 확대되었다.
2009년에 본격화된 상표권 분쟁은 2012년 바카디의 승리로 마무리되면서 미국 내 판매가 적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패소한 페르노리카는 하바니스타(Havanista)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미국 시장 진출을 시도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 이후 바카디는 푸에르토리코 카타뇨에서 생산한 하바나 클럽 레이블을 다시 출시해 미국 시장에 두 가지 버전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재편을 거치며 바카디는 단순 럼 생산자를 넘어 다국적 주류 기업으로 변모했다. 1993년 이탈리아의 “Martini & Rossi”를 인수하며 유럽 시장을 강화했고, 1986년에는 당시 인수·합병으로 급성장한 "Daigeo"에 대해 영국 정부가 독점 경고를 내리자, 1987년 디아지오는 여러 브랜드와 증류소를 포함한 “John Dewar & Sons”를 약 11억 5천만 파운드 규모로 바카디에 매각했다.
이후 바카디는 봄베이 사파이어(Bombay Sapphire), 카사도레스 테킬라(Cazadores Tequila), 빠뜨롱(Patrón), 그레이 구스(Grey Goose) 등을 인수하며 위스키·진·테킬라·보드카 시장까지 진출했다. 현재 바카디는 비상장 가족기업이면서도 세계 주요 주류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으며, 정치적·조세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생산 시설, 법인, 본사를 여러 국가에 분산해 운영하고 있다.
- Santiago, Cuba 1862 ~ 1960
- Malaga, Spain 1974 ~ 1998
- Nassau, Bahama 1966 ~ 2009
- Mexico 1931 ~
- Cataño, Puerto Rico 1958 ~
- Laventile, Trinidad & Tobago 1970's ~ 1990's
- Aragua, Venezuela 1972 ~ 1981
- Lamentin, Martinique
- Brazil
- India

바카디 럼의 전체 생산량 중 약 75 ~ 85%를 담당하는 곳은 푸에르토리코 카타뇨에 위치한 럼의 대성당(Cathedral of Rum) 공장으로, 나머지 생산량은 멕시코와 인도에서 충당하고 있다. 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설탕 정제의 부산물이 당밀을 필요로 하는데, 푸에르토리코는 일찍이 사탕수수 산업이 붕괴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당밀을 도미니카 공화국과 같은 카리브해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공급받는다. 멕시코와 인도의 경우 사탕수수의 재배와 설탕 산업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어 현지에서 직접 조달한다.
유조선을 통해 수입된 당밀은 거대한 탱크에 저장되며, 발효 공정을 시작하기 전 바카디만의 독점 효모 균주를 배양한다. 이후 세포 수를 증가시키는 5단 증식 단계를 거쳐 발효에 투입한다. 카타뇨 공장 부지에는 약 20개의 대형 발효탱크가 있으며, 약 20 ~ 30시간의 짧은 발효로 비교적 깔끔하면서도 가벼운 럼을 만든다. 발효를 통해 알코올 도수 약 10 ~ 12%의 매쉬가 생성된다.

증류의 경우 설립자인 파쿤도의 생산 방식을 현재도 차용하고 있다. 첫 번째는 구리와 주철로 된 팟 스틸을 통해 보다 풍부한 향미를 지닌 증류액을 얻는다. 아구아르디엔테라 부르는 이 증류액에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휘발성 화합물을 남겨 바디감과 풍미를 부여하도록 한다. 다른 하나는 단일 스틸을 활용하여 증류한 레데스틸라도이다. 이것은 연속식 증류를 통해 보다 순수하면서도 깨끗한 증류액을 만들어낸다.
바카디는 아구아르디엔테와 레데스틸라도를 레시피에 다양한 비율로 블렌딩 하는 병렬 공정을 통해 바카디 특유의 가볍고 깨끗한 스타일의 라이트 럼을 생산한다. 여기에 바카디 전통의 핵심 공정 중 하나인 활성탄 여과(Charcaol Filtering)를 통해 블렌딩 된 증류액에 남아 있는 불순물과 잡다한 향미성분을 제거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숙성을 위해서 아메리칸 오크를 용이하게 공급받을 수 있는 미국 플로리다 잭슨빌에 위치한 공장으로 운송하여 숙성시킨 뒤, 블렌딩 및 희석하여 최종 안정화 과정을 거친다. 바카디의 경우 대량 생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엄격한 품질관리 또한 병행된다. 최종 블렌드는 화학적 분석과 관능 평가를 통해 검증되며, 표준 알코올 도수로 희석한 뒤 냉각 여과 과정을 거쳐 병입 된다.

병입 시설의 경우 전 세계 약 10개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나 주요 시설은 8곳으로 좁혀진다. 푸에르토리코의 시설은 바카디의 주력 생산 및 병입 거점으로, 전 세계 럼 소비량의 상당 부분을 공급한다. 멕시코 툴티틀란(Tultitlán)과 그 외에 위치한 거점에는 증류 시설과 병입 시설이 모두 완비되어 있다. 럼뿐만 아니라 데낄라와 진 같은 보조 브랜드의 생산 및 병입도 겸비하는 생산 허브에 가깝다.
이탈리아 페시오네(Pessione)에는 바카디의 자회사인 "Martini & Rossi"가 전개하는 제품들을 제조하고 병입 및 포장하는 시설이 위치해 있다. 캐나다, 미국, 독일 그리고 프랑스에도 산하 브랜드를 위한 병입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특히 유럽에서도 영국에 위치한 바카디의 병입 시설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잉글랜드 햄프셔 오버턴 인근 옛 제지공장이었던 레이버스토크 밀(Laverstoke Mill) 건물을 리노베이션 해서 봄베이 사파이어 증류소 겸 비지터 센터로 탈바꿈시켰다. 이곳은 진 제품의 병입과 포장에 집중하고 있다. 영국 내에 과거에는 "Bacardi-Martini UK" 산하의 사우샘프턴 병입시설이 있었고, 여기서 럼을 비롯한 RTD 드링크 제품들도 병입 하곤 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회사는 RTD 제품의 수요 감소 및 규모의 경제 상실로 병입시설을 폐쇄하고, 행정과 물류 그리고 마케팅 기능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다.
영국에서의 스카치 위스키 사업은 자회사인 "John Dewar & Sons"를 통해 이루어진다. 2007년 이후 글래스고의 시설에 새로운 병입 라인과 포장 시설 그리고 블렌드 센터가 설치되었고, 포니엘(Poniel)에 숙성 캐스크를 수용할 수 있는 웨어하우스를 증축했다. 또한 영국에서의 환경 규제에 발맞춰 에너지 효율과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병입 및 포장 환경 개선이 이루어졌다.
Reference
History - Casa Bacardi 'The Cathedral of Rum'
Difford's Guide is the world's best and biggest guide to cocktails, spirits and liqueurs
www.diffordsguide.com
Bacardi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Alcoholic beverage company Bacardi Limited ( bə-KAR-dee, Spanish: [bakaɾˈði], Catalan: [bəkəɾˈði]) is the largest privately held, family-owned spirits company in the world.[1] Originally known for its Bacardí
en.wikipedia.org
Bacardí, rum and patriotism (1862-1898)
Bacardí is undoubtedly the most famous rum brand in the world. But more than a brand, we are talking about a style and a new aesthetic that emerged in the
rumporter.com
'Rum > Distillery & Brand'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클레랑(Clairin), 원시적인 럼의 형태를 띠고 있는 아이티의 토속 증류주 (0) | 2025.10.11 |
|---|---|
| 나인 리브즈(Nine Leaves), 역사속으로 사라진 일본의 크래프트 럼 증류소 (0) | 2025.10.08 |
| 프로비덩스(Providence), 아이티에서의 불연속 증류식 럼 부흥 프로젝트 (0) | 2025.08.27 |
| 알코홀레스 피노스 도미니카노스(Alcoholes Finos Dominicanos/AFD), 도미니카 공화국 최대 규모의 증류업체 (0) | 2025.08.16 |
| 므호바(Mhoba), 남아프리카의 소규모 & 고품질 럼 생산자 (0) | 2025.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