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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10년 LL/ME 및 기타 배치에 대한 블라인드 테이스팅 썸네일 러셀 10년 LL/ME 및 기타 배치에 대한 블라인드 테이스팅 2024년 10월, 와일드 터키 애호가이자 유명 사이트 관리자인 "Rare Bird 101"에서 러셀 10년에 관한 한 글이 게시되었다. 그의 페트리온(Patreon) 후원자 또는 러셀 레니게이드(Russell's Renegades)의 회원들로부터 2024년 5월 20일 병입분인 LL/ME20 배치를 한 번 시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는 기존의 여러 배치들과의 비교보다는 LL/ME20에 대해 집중적으로 시음하면서 러셀 10년의 프로파일이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Russell's Reserve 10 LL/ME – Rare Bird 101When I say that Russell’s Reserve 10 LL/ME20 is exceptional bourbon - far ab.. 2025. 1. 25.
펜실베이니아 & 모논가헬라 스타일 라이 위스키의 역사 (Pennsylvania & Monongahela Style Rye Whiskey) 썸네일 펜실베이니아 & 모논가헬라 스타일 라이 위스키의 역사 (Pennsylvania & Monongahela Style Rye Whiskey) 메릴랜드 스타일 라이 위스키의 역사 (Maryland Style Rye Whiskey)1607년, 영국의 이주민들이 지금의 버지니아에 정착하여 제임스타운을 건설한 이래로 체서피크만과 그 지류를 따라 식민지가 확장되었다. 특히 연합 왕국에 속하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많labas24.tistory.com  메릴랜드의 라이 위스키 이전에 미국 최초의 위스키 스타일이라고 알려진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또는 모논가헬라(Monongahela) 라이 위스키가 존재했다. 영국의 이주민들이 지금의 버지니아에 정착하여 제임스타운을 건설한 이래로 체서피크만과 그 지류를 따라 식민지가 확장되었다. 특히 연합 왕국에 속하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많은 사람들이 식민지 미국으로 이주해 왔는데, 이들은 고향의 위.. 2024. 11. 12.
메릴랜드 스타일 라이 위스키의 역사 (Maryland Style Rye Whiskey) 썸네일 메릴랜드 스타일 라이 위스키의 역사 (Maryland Style Rye Whiskey) 1607년, 영국의 이주민들이 지금의 버지니아에 정착하여 제임스타운을 건설한 이래로 체서피크만과 그 지류를 따라 식민지가 확장되었다. 특히 연합 왕국에 속하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많은 사람들이 식민지 미국으로 이주해 왔는데, 이들은 고향의 위스키 맛을 재현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 나는 곡물과 본국의 증류 기술을 활용하여 독특한 스타일의 위스키를 탄생시켰다. 처음에는 주로 농사짓고 남은 잉여 곡물로 신중하게 만들곤 했으나, 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메릴랜드 상류와 펜실베이니아로 이주한 사람들은 거대한 땅을 개간하여 더 많은 양의 곡물로 위스키를 생산할 수 있었다.   두 지역 사이의 차이점은 펜실베이니아에서보다 메릴랜드에서 옥수수가 더 잘 자랐다는 것에 있었다. 매콤한 맛이 특징인 라이 위스키에 옥수수의 .. 2024. 11. 6.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X : 앨버타 디스틸러스(Alberta Distillers) 썸네일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X : 앨버타 디스틸러스(Alberta Distillers) Alberta Distillers  1946년, 캐나다의 석유 사업가 프랭크 맥마흔(Frank McMahon)과 신문의 발행인이었던 맥스 벨(Max Bell)이 앨버타주의 광대한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호밀을 활용하여 위스키를 생산하기 위해 캘거리에 "Alberta Distillers Ltd."를 설립하고 증류소를 건설했다. 2년 뒤, 증류소가 완공되면서 이를 운영 및 감독하기 위한 일환으로 증류업자인 조지 리펠(George Reifel)을 합류시켜 복잡한 호밀(Rye) 위스키 증류 공정을 확립하도록 했다.  당시 캐나다의 증류업체들은 증류소에서 자체적으로 병입 시설을 구비하지 않고 미국에 위스키를 벌크로 운송했었는데, "Alberta Distillers Ltd."는 이러한 관행을 깨면서 일종의 혁.. 2024. 10. 14.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IX : 밸리필드(ValleyField) 썸네일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IX : 밸리필드(ValleyField) ValleyField Distillery  20세기 초, 세인트 로렌스강의 한 섬에 "Star Biscuits"라는 제과점이 설립되었다. 1911년, 새로운 소유주인 에두아르 헤베르(Edouard Hebert)가 이 제과점을 "Golden Lion Brewery"로 변경하여 주류를 생산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이름이 여러 번 바뀌면서 증류소로 전환되었고,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는 동안 주류를 수출하기 위해 전력으로 가동되었다고 전해진다. 1938년, "Quebec Distillers Company"가 증류소를 인수하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감자와 곡물을 활용하여 군수 및 산업용 알코올을 생산하는 시설로 전환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Schenley Distillers Corporation"이.. 2024. 10. 14.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VIII : 김리(Gimli) 썸네일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VIII : 김리(Gimli) Gimli Distillery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약 22개에 달하는 캐나다의 대형 증류업체들이 전 세계에 위스키를 공급하면서 황금기를 열었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1968년경 "Seagram"은 깨끗한 물과 자연적인 환경을 갖춰 위스키 생산에 이상적인 장소로 꼽히던 매니토바주의 김리 지역에 "Gimli Distillery"를 설립했다. 설립 초기에는 소규모로 시작했으나, 이후 "Crown Royal" 브랜드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증류소의 규모와 생산 능력이 크게 확대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 버번 침체기(Glut Era)에 종지부를 찍고 조금 더 무거운 풍미의 브라운 스피릿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보다 가벼운 위스키(Light Whisky)를 생산해 오던 캐나다 증류업체들의 지분이 점차.. 2024. 10. 14.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VII : 포티 크릭(Forty Creek) 썸네일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VII : 포티 크릭(Forty Creek) Forty Creek Distillery  1954년, 스위스의 기계 엔지니어였던 오토 리더(Otto Rieder)가 어느 날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하기 위해 차로 이동하던 도중 길가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과수원에 놀랐다. 그에게 있어 캐나다란 밀밖에 자라지 않는 춥고 척박한 나라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더욱 놀랐던 것은 과수원이 이렇게 많은 데에도 증류소가 없었던 것에 있었다. 과일을 증류하여 키르쉬를 생산해 오던 아버지와 같이 그도 같은 꿈을 꾸었고, 수십 명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융통하여 1972년경 온타리오주 나이아가라 지방 기슭에 위치한 그림스비에 "Knittling Ridge Distillery"를 설립했다. 과일 오드비를 생산하는데 있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2024. 10. 14.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VI : 시그램 컴퍼니(Seagram Company) 썸네일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VI : 시그램 컴퍼니(Seagram Company) Joseph E. Seagram  1841년, 온타리오주 어퍼 캐나다(Upper-Candana) 뉴호프의 옥타비우스 오거스트 시그램과 아멜리아 스타일스 사이에서 태어난 조셉 엠 시그램(Joseph Emm Seagram)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성공회 성직자인 마이클 부머의 보호를 받았다. 그는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약 1년간 칼리지를 다닌 뒤 고향으로 돌아와 도끼자루 공장에서 회계사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선임 회계사와 다투고 공장을 나와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한 그는 빌헬름 헤스펠러라는 사람에게 고용되었다. 빌헬름 헤스펠러는 잡화점과 지역에 곡물을 공급하는 제분소를 운영했는데, 그의 파트너인 조지 랜달(George Randall)과 윌리엄 루스(William Roos)가 제분소의 .. 2024. 10. 12.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V : 헨리 코비(Henry Corby) 썸네일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V : 헨리 코비(Henry Corby) Herny Corby  1806년, 영국 핸웰에서 태어나고 자란 헨리 코비(Henry Corby)는 런던의 어느 빵집에서 제빵사로 일했다. 1832년, 알마 윌리엄스라는 여자와 결혼한 그는 당시 퀘벡주의 절반을 이루는 어퍼 캐나다(Upper-Canada)의 온타리오로 이주하여 소액의 자본으로 상품에 투자하고 자그마한 잡화점과 빵집을 열었다. 이후 지역 민병대 또는 지역 군대에 식량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1838년, 그의 아내와 세 자녀가 썰매를 타던 도중 물에 빠져 익사하자 실의에 빠진 그는 점포를 모두 매각하고 증기선을 구입하여 벨빌(Belleville)과 킹스턴(Kingston) 사이를 잇는 곡물 및 상품 운송업에 종사했다. 1842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의 자매인 마틸다와 결.. 2024. 10. 12.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IV : 존 필립 와이저(John Philip Wiser) 썸네일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IV : 존 필립 와이저(John Philip Wiser) John Philip Wiser (JP Wiser)  1825년, 미국 뉴욕주 오네이다 카운티의 아이작 J. 와이저(Issac J. Wiser)와 메리 에거트 사이에서 존 필립 와이저(John Philip Wiser)가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농업과 밀접한 배경을 가지고 있던 탓에 뉴욕에서 무척 실용적인 농부로 살아갔다. 1857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프래스콧으로 이주한 그는 고모부이자 위스키 증류업자인 찰스 에거트(Charles Egert)와 그의 파트너인 에이모스 아버렐(Amos Aberell)이 운영하는 "Charles Payne Distillery"에 합류하여 증류소 관리자로 처음 주류 산업에 발을 디뎠다. 그는 증류소의 운영을 맡아 경영 능력을 발휘했고, 그의 리더쉽 하에 회사는 급격하게 .. 2024. 10. 12.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III : 구더햄 & 워츠(Gooderham & Worts) 썸네일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III : 구더햄 & 워츠(Gooderham & Worts) Gooderham & Worts  1790년, 잉글랜드 노퍽주 스콜에서 제임스 구더햄(James Gooderham)과 사라 구더햄 사이에서 태어난 윌리엄 구더햄(William Gooderham)이 처남인 제임스 워츠(James Worts)와 함께 퀘벡주가 둘로 나누어진 어퍼 캐나다(Upper-Canada)로 이주하여 풍력 발전 제분소를 설립했다. 당시 토론토는 아직 산업화가 진행 중이던 시기였고 여전히 농업은 주요 산업 중 하나였다. 구더햄과 워츠는 이 비옥한 땅에서 나는 밀을 활용하여 밀가루를 생산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1834년, 처남 제임스 워츠가 비극적으로 자살한 뒤에 잠시동안 "Worts & Gooderham"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회사의 단독 소유주가 된 그는 이름을 "William Good.. 2024. 10. 12.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II : 하이람 워커(Hiram Walker) 썸네일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II : 하이람 워커(Hiram Walker) Hiram Walker  181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영국 이민자의 6세대에 해당하는 하이람 워커(Hiram Walker)가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여의어 빠르게 일자리를 구해야 했지만 그 작은 마을에는 일을 할 수 있는 사업체가 전무했고, 결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디트로이트로 떠나야만 했다. 처음에는 식료품점의 점원으로 일한 그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며 사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습득했다. 1845년, 점원으로서 충분한 돈을 모아 가죽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Walker & Parker"라는 사업에 투자했으나 그의 첫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1849년, 당시 미국에서 주류 제조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그는 증류한 식초를 지역에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짙은 농도와 저렴한 가격 그리고 뛰어난 품질로.. 2024. 10. 12.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I : 존 몰슨(John Molson) 썸네일 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I : 존 몰슨(John Molson) John Molson  17세기 초, 유럽민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한 이래로 마을이 생기면서 정착지를 이루었고, 정착지는 다시 더 큰 규모의 식민지로 이어졌다. 특히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퀘벡 지역을 두고 영국과 프랑스가 이를 차지하기 위해 7년 동안 싸우기도 했다. 1763년,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영국의 완전한 식민지가 된 캐나다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주했으며 거기에는 고향에서 핍박을 받던 아일랜드인들과 스코틀랜드인들도 존재했다.   옛 고향에서 주로 보리(Barley)를 사용해 위스키를 만들었던 이들은 풍요로운 이 새 고향에 저렴한 곡물들이 풍부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보리의 양을 줄이는 대신 캐나다의 비옥한 땅에서 재배되는 밀(Wheat)을 활용하여 본국에서 사용하던 증류 기술을 통해 술을 만들기.. 2024. 10. 12.
유기농/오가닉(Organic) 위스키의 정의 썸네일 유기농/오가닉(Organic) 위스키의 정의 현대에 들어서 음료 산업은 해마다 꾸준하게 성장했고 소비자의 트렌드가 친환경적이면서도 건강에 좋은 쪽으로 흘러가면서 주류 업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와인 산업에서 오가닉(Organic), 바이오다이나믹(Biodynamic), 내추럴(Natural) 등 자연주의 와인이 대두됨에 따라 많은 생산자들이 이를 실천했다. 이러한 추세는 위스키 산업에까지 번지면서 스카치 위스키 협회(SWA)로 하여금 자체적인 지속 가능성(Sustainable) 목표를 수립하게 했고 여러 증류소들이 연구 및 개발 단계에 들어갔다. 하지만 유기농 위스키 생산을 위한 다양한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일부 증류소만이 극히 적은 배치만을 생산했으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환경 개선을 위한 오염 처리 기술의 보강 등이 이루어졌다. 어떤 요인이 .. 2024. 8. 19.
일본 주세법의 역사와 구분 그리고 재패니즈 위스키에 대한 정의 썸네일 일본 주세법의 역사와 구분 그리고 재패니즈 위스키에 대한 정의 1937년 중일 전쟁으로 전장의 병사에게 보내는 쌀과 쌀을 이용한 술의 공급 문제 때문에 시장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때문에 업자들이 술에 물을 넣어 양을 한없이 늘린 저품질의 야미슈(闇酒) 또는 우스메슈(薄め酒)가 횡행하게 된다. 1940년 일본 정부는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유통되는 술을 알코올 도수와 품질에 맞게 분류하여 특급(特級), 1급, 2급, 3급, 4급, 5급으로 나누었다.   1943년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주류는 배급제가 되었으며 1949년 종전 후 배급제가 풀려 주류 판매의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급 제도는 품평회에 의해 실질적으로 특급, 1급, 2급 세 단계로 고착화되었으며 각 급에 부과되는 주세의 비율이 정해졌다. 이것은 생산자의 신청에 의한 것으로, 등급심사를 거치지 않으면 2.. 2024.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