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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y/Distillery & Brand32

티퐁(Tiffon) & 브라스타드(Braastad), 세대를 거듭하는 네고시앙 Maison Tiffon & Braastad 1875년 메데릭 티퐁(Médéric Tiffon)이 앙굴렘과 꼬냑 지방 사이에 위치한 자르냑(Jarnac)에 “Tiffon”을 설립하고 뤼 데 뫼니에르(Rue des Meuniers) 포도원에서 처음 오드비를 생산했다. 1913년 메데릭 티퐁의 손녀인 에디뜨 루소(Edith Rousseau)가 노르웨이 출신의 스베르 브라스타드(Sverre Braastad)와 결혼했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스베르 브라스타드가 메데릭으로부터 “Tiffon”을 인수하여 그의 아내와 함께 운영하게 된다. 이듬해 그들은 수출입을 위한 창고 건물을 세우기 위해 마담 섬(l’île de Madame) 부두에 부지를 구입했으며 본격적으로 꼬냑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1926.. 2024. 4. 17.
지보앙(Giboin), 보더리와 팡 부아를 아우르는 증류 업자이자 자가 생산자 Giboin 18세기까지 프랑스 왕들이 사냥을 즐겨했던 레르미타쥬(l’Hermitage) 지역은 프랑스 혁명 이후 그곳에 거주하던 농민들에게 토지가 분배되면서 개간되었고 이후 포도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1830년부터 레르미타쥬 지역에서 포도 재배와 오드비 생산을 해오던 랑베르(Lambert) 가문은 1850년 피에르 랑베르(Pierre Lambert) 때에 이르러 약 10헥타르의 포도원을 구입하여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 1870년 전 유럽의 포도나무를 황폐화시킨 필록세라 바스타트릭스(Phylloxera Vastatrix)가 레르미타쥬 포도원에도 들이닥쳤지만 특유의 검은 점토층 덕분에 곤충은 포도나무뿌리까지 도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석회석이 없고 석고 하층토가 존재했기 때문에 토양은 수분을 잘 잡아두.. 2024. 3. 30.
폴 지로(Paul Giraud), 보다 광범위하고 다양한 향미를 추구하는 그랑 샹파뉴의 꼬냑 생산자 Paul Giraud  17세기 초부터 샤랑트 지역의 부트빌(Bouteville) 마을을 기반으로 포도밭을 경작한 지로(Giraud) 가문은 1800년경부터 꼬냑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여러 세대에 걸쳐 포도 재배와 증류 기술을 계승해 온 가문은 증류업자(Bouilleur de Cru)로서 생산한 대부분의 오드비를 대형 하우스나 네고시앙에게 판매해 왔다.  1940년대에 들어서 가문의 10대째에 해당하는 폴-장 지로(Paul-Jean Giraud)의 아버지가 미래를 위해 생산한 오드비의 일부를 오크통에 넣어 따로 보관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더 큰 창고가 필요해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수행되었다. 1960년 지하 창고를 구입하여 숙성고로 개조한 후 근처의 개울이 숙성고 인근을 흐르도록 만들어 높은 습도를 제.. 2024. 2. 20.
샤또 드 로바드(Château de Laubade), 바-아르마냑의 대표적인 자가 생산자 Château de Laubade 1870년 일종의 연구 농장으로 설립된 샤또 드 로바드(Château de Laubade)는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가 죠셉 눌랑(Joseph Noulens)과 파리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잔느 파껭(Jeanne Paquin) 등 유력인들의 거주지로 알려져 있었다. 1974년 가스코뉴에서도 랑드(Landes) 출신이었던 곡물 상인 모리스 레구르그(Maurice Lesgourgues)는 우연히 로바드의 사유지를 발견하고는 사랑에 빠졌다. 이곳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독특한 떼루아 그리고 브랜디를 숙성시키기 적합한 지하 숙성고는 기존의 와인 생산지에서 아르마냑 생산지로 탈바꿈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모리스는 샤또 드 로바드와 부속된 포도원을 구매하고는 포도나무를 뽑아 다시 심.. 2024. 1. 22.
보동(Vaudon) & 프랑수아 브와이에(François Voyer) Vaudon & François Voyer 1771년 프랑수아 가보리(François Gaborit)가 양아들인 피에르 날베르(Pierre Nalbert)에게 샤랑트(Charente)의 메리냑(Mérignac) 영지와 포도원을 상속했다. 1811년에 회사를 설립했으며 1833년부터 피에르의 아들인 드니 날베르(Denis Nalbert)가 사업을 이어받아 포도원을 확장하고 직화 방식의 396리터 용량 팟 스틸을 활용하여 와인을 증류한다.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회사는 성장해 나갔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피에르 무쎄(Pierre Mousset)가 포도원을 이어받아 약 2,500리터 상당의 팟 스틸(Alembic Charentais)을 설치하여 오드비 생산량을 끌어올렸다. 딸인 안느-마리 무쎄(Anne-Ma.. 2024. 1. 15.
도멘 드 다니스(Domaine de Danis), 폴 블랑슈를 위시로 하는 테나레즈의 독립적인 아르마냑 생산자 Domaine de Danis 아르마냑 랑드(Landes) 숲 가장자리의 제르(Gers) 지역에 위치한 도멘 드 다니스(Domaine de Danis)는 뱅상 피끄말(Vincent Piquemal)과 빅투아르 피끄말(Victoire Piquemal) 남매가 운영하고 있는 포도밭이다. 피끄말 가문의 와인 양조와 아르마냑 생산의 전통은 그 이전 세대인 할아버지대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위니 블랑과 바코 품종을 기반으로 "Domaine de Danis"가 아닌 이름으로 몇몇 병입을 출시했다. 이후 1975 ~ 1992년까지 포도나무 재배와 아르마냑 생산을 관리한 사람은 남매의 아버지인 빅토르 피끄말(Victor Piquemal)이었다. 1982년 그는 아르마냑을 만드는 데 있어 주로 위니 블랑과 바코 품종을 사.. 2024. 1. 10.
아베까시스(ABK6), 새로운 세대를 겨냥한 신생 꼬냑 하우스 ABK6 (Abécassis) 20세기 알제리서부터 포도를 재배해 온 증조부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꼬또 바루아(Coteaux Varois)의 아펠라시옹을 소유했던 아버지를 이어 포도 재배자 및 와인 생산자의 길을 걸었던 프란시스 아베까시스(Francis Abécassis)는 1980 ~ 90년대 사이에 와인 산업 위기로 큰 어려움을 겪어 농장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프란시스는 다른 일을 찾아 여러 와인 생산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샤랑트 지방에서 생산되는 꼬냑에 매료되었다. 2000년 그는 그곳으로 이주하여 포도원을 구입하고 꼬냑 생산에 대한 여러 지식들을 공부했다. 2005년 프란시스는 회사를 설립하고 가문의 이름을 따서 ABK6(Abécassis)로 명명했다. 그는 우선 팡 부아에 위치한 레이라(L.. 2024. 1. 9.
베르트랑(Bertrand), 쁘띠 샹파뉴의 전통적인 자가 생산자 Bertrand & Domaine des Brissons de Laage 1731년부터 베르트랑 가문은 샤랑트(Charente)의 레오(Réaux) 지역에 정착하여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하며 오드비를 증류하고 있었으며, 포도밭의 이름을 딴 "Domaine des Brissons de Laage" 레이블로 꼬냑을 병입하고는 했다. 1990년 레이몽 베르트랑(Raymond Bertrand)이 사망하고, 강인한 성격을 가지고 있던 그의 아내 시몬느(Simone)가 회사를 계승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후 두 자녀 테레즈(Thérèse)와 사뮈엘(Samuel) 어머니를 도와 회사 운영에 참여했다. 테레즈는 상업 및 마케팅 측면을 맡았으며, 미국인 남편 토마스 홀(Thomas Hall)은 장인인 장 프랑수아.. 2023. 12. 30.
까뮈(Camus), 보더리 기반의 대형 꼬냑 하우스 Maison Camus 1863년 젊은 재배자이자 와인 생산자인 장-밥티스트 까뮈(Jean-Baptiste Camus)가 샤랑트(Charente) 보더리(Borderies) 지역에 위치한 샤또 드 플레시(Château de Plessis)에 정착했다. 그는 독립적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하며 오드비를 증류했으며 대부분 대형 꼬냑 하우스에 판매했다. 이후 확장을 꾀했지만 보유한 오드비 재고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La Grande Marque”라는 생산자 연합을 조직하여 재고를 합치기로 결정했다. 그들의 목적은 꼬냑의 생산 및 공급 측면에서 일관된 품질을 보장함과 동시에 최고의 오드비를 생산하는 것에 있었다. 1870년부터 이들의 꼬냑은 영국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며 즉각적으로 큰 성공.. 2023. 12. 28.
로제 그루(Roger Groult), 5대에 걸친 페이 도쥬의 깔바도스 생산자 Roger Groult 18세기 노르망디의 생시르 뒤 롱세레(St. Cyr du Ronceray)에 위치한 끌로 드 라 위바니에르(Clos de La Hurvanière) 농장으로 이주한 그루(Groult) 가문은 수 세기 전부터 사과를 생산해 오던 그 지역의 전통을 이어갔다. 1850년 피에르 그루(Pierre Groult)는 자신만의 깔바도스를 생산하기 위해 팟 스틸을 구입하여 시드르(Cidre)를 증류했으며, 숙성고를 건설했다. 다른 생산자로부터 배럴을 구입해 재고를 채우기도 했다. 당시 깔바도스는 관행처럼 주로 벌크 또는 오크통 단위로 판매되었지만, 그는 자체적으로 병입 하여 시장에 내놓았다. 좋은 떼루아와 세심한 생산 방법 덕분에 그의 숙성된 깔바도스는 좋은 평판을 얻기 시작했다. 그의 아들 레.. 2023. 11. 22.
레이몽 라뇨(Raymond Ragnaud), 150년의 전통을 계승해 나가는 여성 꼬냑 생산자들 Raymond Ragnaud 1860년 라뇨(Ragnaud) 가족은 숙성에 적합한 오드비의 수요가 가장 많았던 지역인 그랑 샹파뉴에 작은 포도원을 소유했다. 이후 1920년, 크리퇴이 라 막달렌느(Criteuil-la-Magdaleine)에 일부 사유지를 가지고 있던 폴 라뇨(Paul Ragnaud)는 독립하여 샤또 당블빌(Château d'Ambleville)의 일부 사유지를 구입하여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후대를 위해 생산한 오드비를 전부 판매하지 않고, 일부 숙성시켜 재고를 쌓아나갔다. 1941년 아들인 레이몽 라뇨(Raymond Ragnaud)가 유산을 이어받았다. 아버지 폴이 시작한 회사는 이때 레이몽 라뇨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발전했으며, 물려받은 오드비를 직접 병에 담아 시장에 내놓기로 결정했.. 2023. 11. 13.
르몰통(Lemorton), 산뜻함과 꽃내음의 동프롱테 깔바도스 생산자 Lemorton 르몰통(Lemorton)은 프랑스 노르망디 오른(Orne) 지역의 동프롱테 보카쥬(Domfrontais Bocage) 남부 멍띠이(Mantilly)에 위치하고 있다. 20세기 초 이시도어 빅토르 르몰통(Isidore Victor Lemorton)은 기존의 농장을 사들여 배나무와 사과나무를 심고 르몰통(Lemorton)이라는 브랜드로 깔바도스를 생산하여 오랜 기간 명성을 쌓았다. 거의 100년 전부터 깔바도스를 병입 하기 시작한 이래로 모든 것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일부 테스터 그룹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제품을 변경하지도 않았다. 이시도어의 슬하에는 5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중 장남인 루이 알렉상드르 르몰통(Louis Alexandre Lemorton)과 차남인 로제 빅토르 르몰통(.. 2023.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