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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y/Distillery & Brand53

샤또 드 옹땅베르(Château de Hontambère), 테나레즈 기반의 신생 아르마냑 생산자 썸네일 샤또 드 옹땅베르(Château de Hontambère), 테나레즈 기반의 신생 아르마냑 생산자 Château de Hontambère  수세기 동안 가스코뉴 지방의 불벤 토양으로 구성된 테나레즈(Ténarèze) 떼루아에서 여러 생산자들이 아르마냑을 생산해오곤 했다. 특히 카스텔노 도장(Castelnau-d'Auzan) 근처에 위치한 옹땅베르라는 이름의 부지에서는 그 노하우와 가치가 영속되어 왔다.   2008년, 현 소유주가 샤또 드 옹땅베르(Château de Hontambère)를 인수한 뒤 4 ~ 5년에 걸쳐 아르마냑의 생산 방식에 혁신을 가져왔다. 기존 약 12헥타르에 불과했던 포도밭을 약 40헥타르로 늘렸으며, 전통적인 품종이었던 위니 블랑을 포함해 바코와 폴 블랑슈 그리고 꼴롱바르를 포함시켰다. 또한 이동식 증류기에 의존했던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과는 달리, 부지에 알람빅 스틸(Alem.. 2025. 4. 3.
프랑수아 페이로(François Peyrot), 그랑 샹파뉴 기반의 자가 생산자이자 증류업자 썸네일 프랑수아 페이로(François Peyrot), 그랑 샹파뉴 기반의 자가 생산자이자 증류업자 Maison François Peyrot  1893년, 장-밥티스트 페이로(Jean-Baptiste Peyrot)라는 사람이 처음 꼬냑 지방에 정착하여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했다. 1956년이 되어서야 장과 그의 아내 마틸드는 라 베르제로네뜨(La Bergeronnettes)라 불리는 약 7헥타르의 포도밭을 인수하여 오드비를 생산하고 다른 하우스 및 도매업체들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꼬냑에 대한 인기가 상승하자 포도원의 규모도 동시에 확장되었고, 생산량의 일부를 오크통에 넣어 숙성 재고를 축적해 나갔다.  1971년, 남매인 프랑수아(François)와 지젤(Gisele)은 오드비를 납품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숙성 재고를 활용하여 처음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딴 꼬냑을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그 해에 꼬.. 2025. 3. 15.
아 드 퓌시니(A. de Fussigny), 신생 소규모 꼬냑 네고시앙 썸네일 아 드 퓌시니(A. de Fussigny), 신생 소규모 꼬냑 네고시앙 A. de Fussigny  1814년, 프랑스 출신의 앙투안 드 퓌시니(Antoine de Fussigny)라는 사람이 샤랑트강 유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드 퓌시니(De Fussigny)라는 꼬냑 하우스를 설립했다. 이후 그의 후손으로 알려진 안느-마리 팡탕 드 퓌시니(Anne-Marie Pantin de Fussigny)가 알랭 루이 루와이에(Alain Louis Royer)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당시 알랭은 루이 루와이에 가문의 수장이 되었지만 사업을 운영하는 방법에 대한 가족들간의 의견 차이로 1986년경 회사를 떠났고, 아내 쪽 가문의 유산을 물려받아 드 퓌시니 브랜드를 부활시켰다.  2005년, "L&L"이라는 회사의 라프라제트(Lafragette)라는 사람이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지배적 지분.. 2025. 3. 8.
마롤로 그라빠(Marolo Grappa) & 산타 테레사(Distilleria Santa Teresa), 이탈리아 피에몬테 기반의 소규모 고품질 그라빠 생산자 썸네일 마롤로 그라빠(Marolo Grappa) & 산타 테레사(Distilleria Santa Teresa), 이탈리아 피에몬테 기반의 소규모 고품질 그라빠 생산자 Marolo Grappa - Distilleria Santa Teresa  1967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랑게(Lange)에 위치한 알바(Alba)의 와인 양조 학교에서 교사가 되어 허브와 리큐르의 제조라는 중요한 과목을 담당하게 된 파올로 마롤로(Paolo Marolo)는 꾸준한 공부로 증류에 대한 열정을 키워 나갔고, 1977년경 인근에 위치한 한 주택을 매입하여 자그마한 증류소를 설립했다. 당시 외부 벽에 성녀 테레사의 프레스코화가 있는 모습을 보고는 증류소 이름을 산타 테레사(Santa Teresa)라고 지었다. 이듬해 그는 랑게의 예술가였던 지안니 갈로(Gianni Gallo)와의 협업을 통해 자신의 첫 번째 라벨을 디자인했고, 이후 파올로 마롤로의 주요 제품군은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적.. 2025. 2. 10.
헤네시(Hennessy), 오랜 역사와 전통의 대형 꼬냑 하우스 썸네일 헤네시(Hennessy), 오랜 역사와 전통의 대형 꼬냑 하우스 Jas Hennessy & Co.  1740년, 당시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대기근으로 전체 인구의 약 20%가 기아와 전염병으로 사망하자 많은 아일랜드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때 리차드 헤네시(Richard Hennessy)는 기회의 땅이었던 프랑스로 떠나 루이 15세의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지금의 꼬냑(Cognac) 지방으로 은퇴하여 코넬리와 아서라는 2명의 아일랜드인 동포와 함께 "Hennessy Connelly & Arthur"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재배 및 수확되는 포도를 활용하여 브랜디를 증류했고, 이후 "Hennessy-Connelly & Cie"로 회사명을 변경한 뒤 영국과 아일랜드인들의 입맛에 맞는 꼬냑을 생산하여 수출했다. 1778년에 아들 제임스 헤네.. 2025. 1. 22.
샤르팡티에(Distillerie Charpentier), 쁘띠 샹파뉴 기반의 증류업자 썸네일 샤르팡티에(Distillerie Charpentier), 쁘띠 샹파뉴 기반의 증류업자 Distillerie Charpentier  1895년, 필록세라 바스타트릭스의 창궐로 유럽 전역을 비롯해 꼬냑 지방의 많은 포도밭이 황폐화되면서 적절한 가격으로 풀리게 된다. 이에 샤르팡티에(Charpentier) 가족은 쁘띠 샹파뉴에 위치한 한 포도원을 인수하고 모든 포도나무들을 다시 식재하여 1904년부터 수확한 포도로 꼬냑을 증류하기 시작했다. 1972년, 오래된 증류소를 박물관으로 전환하고 새로운 증류소에서 오드비를 생산하여 대형 하우스들에 납품하는 증류업자가 되었다.  5세대에 걸친 사업은 2012년경 프랑수아 샤르팡티에(François Charpentier)가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으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이어졌다. 이때 스코틀랜드의 유명 독립 병입자인 "Wm Cadenhead's"가 샤르팡티.. 2025. 1. 12.
드니 샤르팡티에(Denis Charpentier), 와인 중개업자에서 꼬냑 생산자까지 썸네일 드니 샤르팡티에(Denis Charpentier), 와인 중개업자에서 꼬냑 생산자까지 Denis Charpentier  1984년, 프랑스군에서 복무를 마친 뒤 일본으로 떠난 드니 샤르팡티에(Denis Charpentier)는 그곳에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일본의 와인 중개업자가 될 기회를 얻게 되었다. 2년 뒤, 그는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인 르 피가로(Le Figaro)를 통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수출 관리자 모집 공고를 냈는데, 우연의 일치로 미래에 아내가 될 일본계 프랑스인 후쿠사쿠 미카가 고용되었다. 두 사람은 와인뿐만아니라 아르마냑과 깔바도스 그리고 꼬냑에까지 사업 범위를 확장하면서 여러 브랜드의 일본 시장 독점 업체가 되었다.  1993년, 드니 샤르팡티에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꼬냑을 생산 및 병입하기로 결정했고 이듬해 직.. 2025. 1. 12.
샤또 드 보롱(Château de Beaulon), 독특한 떼루아와 고귀한 품종 썸네일 샤또 드 보롱(Château de Beaulon), 독특한 떼루아와 고귀한 품종 Château de Beaulon   1480년, 루이 11세의 통치 기간에 드 방종(de Vinsons) 가문에 의해 한 샤또(Château)가 설립되었다. 이후 1510년부터 드 보롱(de Beaulon) 가문이 이곳을 완전히 소유하게 되면서 샤또 드 보롱(Château de Beaulon)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화려한 고딕 양식으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중세 건축의 호화로움을 상기시켜 주었다. 1543 ~ 1574년 사이에는 앙리 2세의 고문인 프랑수아 보롱(François Beaulon)의 소유로서 운영되었다가 17세기에 주교이자 루이 14세의 고문이었던 보롱 가문의 한 구성원이 샤또를 보르도 교구의 주교에게 매각했다.  보르도 출신인 그는 샤또 주변에 포도원을 설립하고 보르도 지역에서 와인 생산을 .. 2024. 12. 25.
마랑슈빌(Marancheville), 오랜 증류업자이자 신생 병입자 썸네일 마랑슈빌(Marancheville), 오랜 증류업자이자 신생 병입자 Distillerie Gélinaud - Marancheville Cognac  1950년대에 델라꾸르(Delacour) 가문이 자르냑(Jarnac)을 빠져나가는 언덕 꼭대기에 포도원을 구입하고 주로 그랑 샹파뉴 떼루아 기반의 포도를 재배 및 수확하여 판매했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 가문의 딸인 마리 세실(Marie-Cécile)과 결혼한 노 가문의 필리프 노(Philippe Nau)가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샤랑트 마리팀 꼬뮌으로부터 증류기와 보일러를 가져오면서 증류업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 노 가문의 딸인 엘렌느(Hélène)와 젤리노(Gélinaud) 가문의 그레구아르 뤼까스(Grégoire Lucas)가 결혼하면서 서로 다른 증류업자 가족이 결합되었다. 원래 자동차.. 2024. 12. 23.
도멘 쎄아이유(Domaine Séailles), 테나레즈의 소규모 유기농 아르마냑 생산자 썸네일 도멘 쎄아이유(Domaine Séailles), 테나레즈의 소규모 유기농 아르마냑 생산자 Domaine Séailles  1961년, 툴루즈에 거주하던 변호사 로제 라베렌느(Roger Labérenne)가 시골에 별장을 만들기 위한 일환으로 가스코뉴 중심부의 무샹(Mouchan) 꼬뮌에 위치한 한 시골집을 매입했다. 시골집을 포함한 약 8헥타르 상당의 도멘 쎄아이유(Domaine Séailles) 부지는 아르마냑 생산에 필요한 포도 재배에 매우 적합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라베렌느 가문의 사람들은 포도나무를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나갔다.  1997년, 아버지 로제의 뒤를 이은 장 라베렌느(Jean Labérenne)가 약 26헥타르까지 확장된 포도밭 전체를 유기농 생산 방식을 활용하기로 결정했으며 아르마냑 생산뿐만 아니라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서부터 시작된 유기농법은 2002.. 2024. 12. 15.
로마노 레비(Romano Levi),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그라빠 생산자 썸네일 로마노 레비(Romano Levi),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그라빠 생산자 Distilleria Romano Levi  17세기, 이탈리아 북부의 알프스 계곡에서 동물들과 더불어 살았던 몇몇 사람들은 겨울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코모 호수 북쪽의 키아벤나 계곡에서 롬바르디아(Lombardia) 평원으로 내려오곤 했다. 이들은 주로 발텔리나(Valtellina) 계곡의 사람들이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 찌꺼기들을 활용하여 그라빠(Grappa)라는 증류주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이 증류업자들을 그라빠뜨(Grapat)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라빠뜨들은 포도 수확 및 와인 양조 기간 동안에는 인근 피에몬테 지역으로 잠시 이주하여 이동식 증류기로 그라빠를 생산하기도 했다. 이후 대부분의 증류업자들은 다양한 나라와 지역에 영구적으로 정착하고 증류소를 설립했다.  산 지아코모(San Gia.. 2024. 9. 1.
귀 피냐르 & 피스(Guy Pinard & Fils), 최초의 유기농 꼬냑 생산자 썸네일 귀 피냐르 & 피스(Guy Pinard & Fils), 최초의 유기농 꼬냑 생산자 Guy Pinard & Fils  17세기 초부터 푸시냑(Foussignac) 외곽에 한 포도원이 도멘 드 라 뚜르 베르(Domaine de la Tour Vert)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어 왔으며, 19세기에는 랑송 가문이 소유했다고 전해진다. 1896년 모리스 피냐르(Maurice Pinard)가 질다 랑송(Zilda Ranson)과 결혼하여 지참금으로 도멘 드 라 뚜르 베르 포도원을 이전받아 그곳에 증류소를 설립하고 증류기를 설치했다.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와인과 꼬냑을 생산하여 대형 하우스에 납품하는 증류업자(Bouilleur de Cru)가 되었다.  1969년 조르쥬 피냐르(George Pinard)와 그의 아들 귀 피냐르(Guy Pinard)는 "Guy Pinard & Fils"라는 회사를 설.. 2024. 8. 26.
메종 오리앙(Maison Aurian), 오랜 역사와 신세대의 감각을 모두 겸비한 아르마냑 네고시앙 썸네일 메종 오리앙(Maison Aurian), 오랜 역사와 신세대의 감각을 모두 겸비한 아르마냑 네고시앙 Maison Aurian 1880년, 당시 유명한 주류 상인이었던 조제프 뒤페이롱(Joseph Dupeyron)이 숙성과 블렌딩을 위해 많은 양의 아르마냑 재고를 구입한 것을 계기로 제르(Gers)에 위치한 꽁동(Condom)에 무역 회사를 설립했다. 이곳은 당시 강과 화물 야적장이 동시에 있어 프랑스 전역에 아르마냑을 판매할 수 있는 좋은 유통경로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하나 있는 아들이 사망했으며, 손녀인 잔느(Jeanne)는 마리우스 오리앙(Marius Aurian)이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조제프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마리우스는 직접 숙성하고 블렌딩 한 아르마냑을 대회에 선보이면서 상을 받았고, 이후 뛰어난 품질의 아르마냑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해외에 수출하기에 이른다.  마리우스의 아들인 장.. 2024. 8. 18.
폴 보(Paul Beau) & 로리셰스(Laurichesse), 유산을 이어가는 그랑 샹파뉴의 꼬냑 생산자 썸네일 폴 보(Paul Beau) & 로리셰스(Laurichesse), 유산을 이어가는 그랑 샹파뉴의 꼬냑 생산자 Paul Beau & Laurichesse  19세기 말, 사뮈엘 보(Samuel Beau)가 세공작 주변에 위치한 그랑 샹파뉴 포도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포도원을 구입하고 회사를 설립하여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1914년 사망한 사뮈엘 보 대신에 아들 폴 보(Paul Beau)가 아내 드니스(Denise)와 함께 회사를 이어받고 포도원을 약 100헥타르 이상으로 확장했다. 또한 건물과 증류소를 현대화하여 그들이 생산하는 꼬냑의 품질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렸다. 1964년 소유하고 있던 보더리 포도원을 매각했다.  1977년까지 폴 보는 증류업자(Bouilleur de Cru)로서 주로 숙성된 오드비를 대형 하우스에 납품했는데, 주 거래처였던 레미 마르뗑(Rémy Martin)이 어린 오드비만 .. 2024. 8. 17.
메종 페랑(Maison Ferrand) & 피에르 페랑(Pierre Ferrand) 썸네일 메종 페랑(Maison Ferrand) & 피에르 페랑(Pierre Ferrand) Maison Ferrand & Pierre Ferrand  1989년, 알렉상드르 가브리엘(Alexandre Gabriel)이 꼬냑의 전통적인 생산 방법을 보존하고 혁신을 발전시키겠다는 약속으로 "Maison Ferrand"을 설립했으나, 그 역사는 4세기의 10대에 걸쳐 이 지역에 뿌리를 둔 "Pierre Ferreand"으로부터 시작된다. 17세기 엘리 페랑 1세(Elie Ferrand I)로부터 전해내려 온 포도원과 양조법 그리고 증류 기술은 1838년경 엘리 페랑 7세(Elie Ferrand XII)가 계승하여 그랑 샹파뉴에서도 최심부에 위치한 세공작(Ségonzac)에서 꼬냑을 생산했다고 전해진다.  1877년의 포도 수확을 끝으로 이후 약 15년간 필록세라 바스타트릭스(Phylloxera Va.. 2024.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