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son Ferrand & Pierre Ferrand
1989년 알렉상드르 가브리엘(Alexandre Gabriel)이 꼬냑의 전통적인 생산 방법을 보존하고 혁신을 발전시키겠다는 약속으로 "Maison Ferrand"을 설립했으나, 그 역사는 4세기의 10대에 걸쳐 이 지역에 뿌리를 둔 "Pierre Ferreand"으로부터 시작된다. 17세기 엘리 페랑 1세(Elie Ferrand I)로부터 전해내려 온 포도원과 양조법 그리고 증류 기술은 1838년경 엘리 페랑 7세(Elie Ferrand XII)가 계승하여 그랑 샹파뉴에서도 최심부에 위치한 세공작(Ségonzac)에서 꼬냑을 생산했다고 전해진다.
1877년의 포도 수확을 끝으로 이후 약 15년간 필록세라 바스타트릭스(Phylloxera Vastatrix)가 창궐하여 페랑 가문의 포도밭을 황폐화시켰다. 이 기간 동안 엘리 8세(Elie XIII)는 필록세라가 자신의 포도원뿐만 아니라 꼬냑 산업 전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했으며 힘과 결의를 가지고 단합된 힘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확신했으며, 이것을 퇴치하기 위해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적극적으로 연구했다. 그의 헌신은 그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필록세라 전염병을 정복하여 미래를 위한 꼬냑의 역사를 보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엘리 8세는 필록세라로부터 포도원을 성공적으로 복구한 후, 자신의 꼬냑을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하여 권위 있는 메달을 받음으로써 더욱 인정받았다.
그의 손자인 엘리 프레데릭 폴 페랑(Elie Fréderic Paul Ferrand)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1915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가문의 맥이 끊겼다. 엘리 8세의 증손녀이자 엘리 페랑 가문의 10대 가계 중 마지막인 앙리에뜨 랑송 페랑(Henriette Ranson Ferrand)이 1922년에 태어났다.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은 5년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평생 동안 증조부를 기억하고 그를 높이 평가했다.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아 이 길다란 가계의 마지막이 되었지만 꼬냑에 대한 열정만은 생생하게 유지했다.
알렉상드르 가브리엘(Alexandre Gabriel)은 프랑스 남부 부르고뉴의 한 농장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그에게 와인을 만들고 증류주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성인이 되어 미국으로 유학을 간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파리 비즈니스 스쿨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그는 프랑스의 다양한 와인 생산 지역을 둘러보면서 소규모 생산자들을 만나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했다.
1986년 피에르 페랑(Pierre Ferrand)이라는 증류업자가 당시 대학원생이던 알렉상드르 가브리엘과 장 도미니끄 앙드뢰(Jean-Dominique Andreu)를 고용했다. 둘의 도움으로 자체적으로 병입 한 꼬냑을 판매할 수 있었던 피에르 페랑은 회사 지분의 8%를 각각 나누어주었다.
1989년 어느 날 가브리엘은 그랑 샹파뉴 지역 중심부에 있는, 생산이 거의 중단되었던 오래된 꼬냑 하우스를 발견하고는 뛰어난 꼬냑을 만들고자 하는 강렬한 감정이 엄습했다. 꼬냑 하우스 근처에는 페랑 가문(Ferrand)의 저택이 있었기 때문에 소유주인 앙리에뜨 랑송 페랑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 사이에 평생의 우정이 시작되어 과거 역사의 이야기와 일화를 공유하고 궁극적으로 그녀가 가브리엘에게 페랑 가문의 유산을 이어가도록 맡기는 좋은 관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 해 가브리엘은 "Maison Ferrand"을 설립하고 꼬냑 산업에 뛰어들었다. 1991년 꼬냑 산업에 위기가 찾아왔지만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후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가브리엘은 모든 시간을 회사에 바쳤다.
1993년 피에르 페랑과 회사 문제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의견차이가 보였던 그들에게 불화가 생겼고, 이에 피에르 페랑은 파트너쉽을 파기하고 프랭크 모니에(Franck Monier)와 합작하여 "Monier-Ferrand" 및 "Famille Ferrand"이라는 브랜드를 출시했다. 2000년경 불화는 더욱 심화되어 소송으로 이어졌고 결국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가브리엘과 앙드뢰가 피에르 페랑 브랜드의 소유권을 가지게 된 대신 피에르 페랑 본인은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사용할 권리를 잃었다. 하지만 자신의 포도원과 숙성 재고에 대한 권리는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피에르 페랑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고 "Pierre de Ségonzac"이라는 이름으로 꼬냑을 병입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피에르 페랑이라고 부를 권리를 보유하며 기존 브랜드를 계속 이어간 가브리엘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대출을 받아 대형 꼬냑 하우스인 "Martell"로부터 일부 부지를 포함한 샤또 드 봉보네(Château de Bonbonnet)를 인수하여 본사로 삼았다. 이후 앙리에뜨 랑송 페랑으로부터 약 75헥타르 상당의 그랑 샹파뉴 포도원과 도멘 뒤 로지 당쥬악(Domaine du Logis d'Angeac)의 포도원을 인수하여 약 100헥타르 이상의 포도밭을 소유하게 되었다. 각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피에르 페랑 꼬냑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을 판매할 글로벌 유통 채널을 조직했다.
피에르 페랑의 포도원에서는 살충제를 제한적으로 사용하여 토양 재생을 보장하며, 덩굴 사이의 줄은 잔디로 덮여있어 토양의 통기를 돕고, 뿌리 덮개를 만들어 자연적으로 잡초의 성장을 방지한다. 또한 화학적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양을 키워 땅을 비옥하게 만들며, 기계식 트랙터에 비해 토양을 다지는 데 덜 해로운 잔디 깎기 기계를 사용하여 친환경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포도원은 주로 높은 산도를 가진 위니 블랑(Ugni Blanc) 품종을 재배한다. 꼬냑 지역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포도 품종 중 하나인 콜롱바르(Colombard)를 극히 일부분 재배하여 수확량은 적지만 꽃과 과일 향이 나는 사랑스럽고 향긋한 꼬냑을 생산한다.
수확된 포도는 조심스럽게 수확되어 발효시킨 후 양조 과정을 통해 와인을 만든다. 와인은 샤랑테 팟 스틸(Alembic Charentais)에 이중 증류된다. 두 번째 증류 과정에서 본류(Coeur)만을 취한 뒤, 잠시 동안 특정 열처리 기술을 적용한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복잡성을 약간만 제거하여 더 둥글고 과일 지향적인 오드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먼 과거에는 와인통 혹은 다른 증류주를 담았던 통에서 숙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지만 이 방법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다. 이 방법을 되살리려는 피에르 페랑의 시도는 더블 캐스크 리저브(Double Cask Reserve)라는 제품의 탄생을 알렸다. 프랑스의 주정 강화 와인인 바뉠(Banyuls)을 숙성할 때 사용되었던 배럴에 2차 숙성을 하여 현대 꼬냑 생산에서 더 이상 수행되지 않는 이중 숙성 관행을 되살렸다. 또한 소테른 와인을 숙성 시켰던 소테른 배럴이나 과거 페랑 가문의 선대가 사용했다는 밤나무 배럴을 사용하여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다. 현대의 꼬냑 규정에서는 숙성 꼬냑에 참나무 이외의 목재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증류주 유형을 오드비 드 뱅(Eau-de-Vie de Vin)으로 불러야 한다.
숙성의 경우 꼬냑에서 강조하고 싶은 특성에 따라 나뉜다. 페랑의 건식 숙성고(Chai Sec)는 습도가 30 ~ 60%로 증발에 의한 수분 손실이 발생하지만 알코올 수준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오드비는 더 드라이하고 강한 향신료 뉘앙스가 발현된다. 습식 숙성고(Chai Humide)는 70 ~ 100%의 습도를 가지고 있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코올 수준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오드비는 더 부드럽고 둥글둥글한 특징을 가진다. 숙성된 원액은 마스터 블렌더의 재량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혼합할지 결정한 뒤 병입 된다.
현재 피에르 페랑은 자신의 포도원에서 생산한 그랑 샹파뉴 오드비뿐만 아니라 쁘띠 샹파뉴와 보더리 그리고 팡 부아에서 생산되는 오드비를 구입하기도 한다. 때문에 네고시앙 프로프리에떼르(Négociant Propriétaire)에 속할 수 있다.
Reference
'Brandy > Distillery & Bran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종 오리앙(Maison Aurian), 오랜 역사와 신세대의 감각을 모두 겸비한 아르마냑 네고시앙 (0) | 2024.08.18 |
---|---|
폴 보(Paul Beau) & 로리셰스(Laurichesse), 유산을 이어가는 그랑 샹파뉴의 꼬냑 생산자 (0) | 2024.08.17 |
도멘 프라동(Domaine Fradon), 쁘띠 샹파뉴의 자가 생산자이자 증류업자 (0) | 2024.08.02 |
하인(Hine), 얼리 랜디드 꼬냑의 대명사 (0) | 2024.07.20 |
델라망(Delamain), 오랜 역사의 꼬냑 네고시앙 (0) | 202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