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 레비(Romano Levi),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그라빠 생산자

Distilleria Romano Levi

 

 17세기, 이탈리아 북부의 알프스 계곡에서 동물들과 더불어 살았던 몇몇 사람들은 겨울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코모 호수 북쪽의 키아벤나 계곡에서 롬바르디아(Lombardia) 평원으로 내려오곤 했다. 이들은 주로 발텔리나(Valtellina) 계곡의 사람들이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 찌꺼기들을 활용하여 그라빠(Grappa)라는 증류주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이 증류업자들을 그라빠뜨(Grapat)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라빠뜨들은 포도 수확 및 와인 양조 기간 동안에는 인근 피에몬테 지역으로 잠시 이주하여 이동식 증류기로 그라빠를 생산하기도 했다. 이후 대부분의 증류업자들은 다양한 나라와 지역에 영구적으로 정착하고 증류소를 설립했다.

 

 산 지아코모(San Giacomo) 또는 발 디 주스트(Val di Giust)라 불리는 계곡에서 유대인 출신이자 레비 가문의 한 갈래가 증류를 업으로 삼고 롬바르디아의 프라치시오 디 캄포돌치노(Fraciscio di Campodolcino)에 정착했다. 19세기, 안젤로 레비(Angelo Levi)에게는 9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었던 세라피노 레비(Serafino Levi)는 테레시나 발보와 결혼하여 슬하에 로마노 레비(Romano Levi)와 리디아 레비(Lidia Levi) 두 자녀를 두었다.

 

 1925년, 세라피노는 훌륭한 와인 산지인 피에몬테의 네이베(Neive)로 이주하여 증류소를 설립했다. 그는 전통적인 직화 방식 증류기를 설치하고 뛰어난 품질의 포도 찌꺼기들을 활용하여 그라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라피노는 요절했으며 그의 아내도 전쟁 중의 폭격으로 인해 사망했다.

 

 

 1945년, 당시 17세에 불과하던 로마노 레비가 학업을 그만두고 여동생 리디아의 도움을 받아 증류소를 계속해서 운영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주로 가야(Gaja) 가문을 비롯해 여러 와인 생산자가 네비올로(Neviolo) 품종으로 생산한 포도 찌꺼기를 정원에 2개의 구멍을 파서 채우고 이듬해 4 ~ 5월까지 조금씩 파내어 사용했다. 그 구멍에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모래를 뿌려 보다 차가운 상태를 유지시켰다.

 

 그는 이전 년도의 포도 찌꺼기를 연료로 사용하여 지오반니 말바(Giovanni Malba)의 직화 방식 불연속식 증류기를 운용했으며, 연료로 사용하고 남은 것들은 토르치오(Torcio)라는 기계를 통해 수분을 완전히 빼고 외부에서 2 ~ 3년 동안 건조한 뒤 포도밭의 비료로 활용했다. 증류 끝에 나온 순백색의 그라빠는 바로 오크통에 넣고 원하는 사양에 맞게 약 1 ~ 20년 동안 숙성시켰다. 그렇게 해서 거칠면서 직선적인 증류주가 탄생한 것이다.

 

 1962년, 평소 로마노 레비에게서 그라빠를 자주 구매하던 네이베 출신의 친구 조르지오 아드리아노는 그에게 종이에서 찢어낸 라벨을 만들고 손으로 직접 그려달라는 요청 한다. 로마노는 사비나(Sabina) 부인에게 제작을 위탁하여 약 100종류에 달하는 라벨을 만들었고, 이 라벨들은 로마노가 오랫동안 숙성시켜 거무튀튀한 색을 띠는 다양한 그라빠 보틀에 붙여 판매했다. 이후 사비나 부인이 지치면서 라벨 제작을 그만두게 된다.

 

 어렸을 때 언덕과 포도원을 가로질러 학교에 등교했던 그는 종종 작은 시설이 갖추어진 대피소를 방문하곤 했다. 등교 전 폭풍이 휘몰아쳐 포도원에 가야 할 경우 피난처로 삼았던 그곳에서 이따금씩 아름다우면서 다소 덥수룩한 여성들이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로마노는 이들에게서 자유로움과 신비로움 느끼며 야생 여성(La Donna Selvatica)이라는 영감을 받고 손수 라벨을 그리기 시작했다.

 

 2008년 5월 1일 저녁 로마노 레비는 마지막 라벨을 디자인하고 별이 되었으며 그의 여동생 리디아가 2011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증류소를 운영했다. 이후 로마노 레비의 절친한 친구였던 루이지 스키아파피에트라(Luigi Schiappapietra)와 루치오 스카르띠(Lucio Scartti)가 증류소를 인수했으며 루치오의 딸 엘리사(Elisa)와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르 랑게(Le Langhe)의 여러 와인 생산자들로부터 포도 찌꺼기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 현대적인 설비와 프린팅 라벨을 통해 소수의 그라빠를 생산하고 있다.

 

 

 

Reference

 

The Museum – DISTILLERY ROMANO LEVI | Official Site | The best of italian grappa

Grappa・Romano Levi_16

Romano Levi - The Angelic grappa maker

Distilleria Romano Levi

Romano Levi | Empson & 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