サントリ(Suntory)
산토리(サントリ)의 역사는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리이 신지로(鳥井信治郎)와 타케츠루 마사타카(竹鶴政孝)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879년 오사카 환전상의 차남으로 태어난 토리이 신지로는 13살이 되던 해에 와인과 위스키를 취급하는 약재 도매상에 뎃치보코(丁稚奉公), 즉 고용살이하는 견습생으로 들어가 자립했다. 20살이 되는 해에 그는 토리이 쇼텐(鳥井商店) 간판을 내걸고, 당시 수입품이던 양주를 취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페인산 와인을 수입해 판매하였으나, 당시 일본인들에게 익숙치 않았던 신맛 때문에 잘 팔리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수입 와인에 감미료를 첨가하여 달콤한 와인인 아카다마(赤玉) 포트 와인을 만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큰 성공을 이루었다. 특히 그는 일찍이 광고라는 것에 주목해 당시 오사카 아사히 신문에 포트 와인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1921년 토리이 쇼텐은 주식회사 코토부키야(寿屋)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일찍이 수입상으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수입 위스키의 부가가치와 그것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일본에도 언젠가 위스키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내다보았고, 자신의 손으로 일본 위스키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다. 하지만 주변 지인들은 극구 반대했다. 위스키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긴 시간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토리이는 포트 와인으로 본 이익을 모두 위스키 생산에 쏟아붓기로 결정했다.
타케츠루는 히로시마의 사케 양조 가문 출신으로, 대학에서 화학 및 양조 교육을 받아 가업을 이어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위스키를 만들고자 했던 그는 세츠 슈조(摂津酒造)의 후원으로 위스키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그는 롱몬(Longmorn)과 헤이즐번(Hazelburn) 증류소 등지에서 3년간 일하며 증류소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배웠다. 고국으로 귀국한 타케츠루는 곧바로 위스키를 생산할 계획을 세웠지만, 당시 세츠 슈조의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사업이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일본에 위스키 증류소를 설립하기 위한 부지와 증류소를 운영할 관리자를 찾고 있던 토리이는 위스키를 만들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던 타케츠루를 만나 그 뜻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세츠 슈조를 나온 타케츠루는 10년 동안 토리이를 위해 일하는 대가로 증류소 설립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과 고액의 급여를 약속받았다.
1923년 타케츠루는 스코틀랜드의 기후와 유사한 홋카이도를 증류소 부지로 추천했으나, 토리이는 일본의 고대 수도였던 교토 남서쪽 외곽과 오사카부 동부에 위치한 시마혼마치(島本町) 사이의 좁은 계곡에 야마자키(山崎) 증류소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증류소가 위치한 부지는 기즈가와(木津川), 가쓰라가와(桂川), 요도가와(淀川) 세 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안개가 자욱하고 습도가 높으며 물이 좋아 위스키를 만드는 데 있어서 적합한 환경이라고 토리이는 생각했다. 바로 다음 해부터 알코올 생산을 시작했다.
1929년 아카다마에서 유래되는 붉은 태양의 산(サン)과 토리이(トリイ)를 붙여 산토리(サントリ)라는 이름의 첫 위스키 브랜드 산토리 시로후다(サントリ白札)를 출시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았다. 산토리 시로후다는 당시 스코틀랜드 스타일을 모방한 것으로, 특유의 피트감이 있어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산토리는 시행착오를 끝에 덜 스모키하고 과일이 풍부한 위스키를 만들어 1930년 산토리 아카후다(サントリ赤札)를, 1937년에는 산토리 12년(サントリ12年)을 출시했다. 현재 산토리 가쿠빈(サントリ角瓶)의 전신인 산토리 12년은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토리이와 위스키에 대한 철학이 달랐던 타케츠루는 10년 간의 고용 계약을 마치고 야마자키 증류소를 떠났다. 이후 그는 홋카이도에 요이치(余市) 증류소를 세우고 닛카(ニッカ)를 설립했다.
1950년대에 산토리의 위스키는 일본에서 더욱 대중화되고 문화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비교적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일본인은 더 섬세하고 부드러운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 토리이는 산토리 위스키에 물과 얼음을 섞어 만드는 미즈와리(水割り)라는 클래식한 스타일의 하이볼을 만들어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1961년 토리이의 둘째 아들인 사지 케이조(佐治敬三)가 야마자키 증류소의 경영권을 물려받고, 사장이자 마스터 블렌더가 되었다. 1963년 위스키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그는 회사명을 코토부키야에서 산토리로 변경하고, 도쿄도에 무사시노(武蔵野) 공장을 설립하여 맥주 사업에 진출했다.
1972년 사지 케이조는 보다 다양하고 실험적인 블렌드의 길을 열기 위해, 그레인 위스키 증류소인 치타(知多)와 새로운 몰트 위스키 증류소인 하쿠슈(白州) 건설을 감독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1984년 사지 케이조가 직접 만든 라벨에 독특한 한자가 새겨진 산토리의 첫 싱글몰트 위스키, 야마자키를 출시하면서 증류소의 방향성을 전환했다.
1989년 사지 케이조의 손자이자 3대 마스터 블렌더인 토리이 신고(鳥井信吾)는 블렌디드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하쿠슈 및 치타 증류소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계기로, 산토리 창업 90주년을 기념하는 블렌디드 위스키 히비키(響)를 출시할 수 있었다. 히비키는 산토리의 기업 이념인 자연과의 공생을 담았으며, 24절기를 의미하는 24면의 원형 병으로 디자인되었다. 2013년 야마자키 증류소는 기존 8개의 팟 스틸에서 4개를 더 추가하여 생산량을 40% 끌어올렸다.
2009년 산토리 홀딩스(Suntory Holdings)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기업 부문을 지주 회사로 흡수시키는 동시에, 산토리의 각 회사와 사업부를 기존 자회사에 흡수시키거나 자회사의 신설로 독립시켰다. 위스키, 맥주, 건강식품, F&B, 요식업, 원예업, 글로벌 유통업체 등의 회사를 지주 회사 산하의 자회사로, 순수 지주 회사제로 이행했다. 산토리 홀딩스는 그룹 전체의 경영 전략 수립 및 추진 그리고 기업 기능을 담당하고, 그 방침에 따라 그룹 산하의 기업들이 사업 활동을 전개했다.
2014년 산토리는 미국의 증류소이자 기업인 짐빔(Beam Inc.)을 160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그룹이 재편되었고, 빔 산토리(Beam Suntory)로 회사명을 바꾸어 글로벌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 Yamazaki
- Hakushu
- Chita
- Jim Beam
- Maker's Mark
- Laphroaig
- Bowmore
- Connemara
- Canadian Club
2015년 기존에 저렴한 이미지에 속했던 산토리 위스키는 위스키 평론가 짐 머레이(Jim Murray)의 위스키 바이블(Whisky Bible)에서 “올해의 세계 위스키”로 선정되면서 전 세계 위스키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해 방영된 드라마 맛상(マッサン)의 흥행으로 자국 위스키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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