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초 네덜란드 식민지 개척자들은 데메라라와 에세키보에 정착촌을 세우고 광활한 해안 평원에 사탕수수와 담배를 포함한 다양한 플랜테이션 작물들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들로 수출하기 위해 무역회사를 세운 그들은 암스테르담의 광대한 운하 시스템을 모방하여 가이아나의 강과 해안 지역을 가로지르는 광대한 운하를 만들었다. 바지선에 사탕수수를 높이 쌓아 올려 설탕 공장까지의 먼 거리를 운하를 따라 손쉽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및 영국 통치 시기의 설탕과 럼 생산은 카리브해의 다른 지역과 유사한 설탕 농장(Sugar Estate) 모델을 기반으로 했다. 각 구획은 농장과 그곳에서 재배된 사탕수수를 가공하기 위한 설탕 공장으로 구성되었다. 대부분의 농장에는 사탕수수의 부산물인 당밀을 처리하기 위한 일환으로 다소 원시적인 성격을 띠는 증류기(Alembic Still)를 구비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럼은 설탕 산업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1703년 네덜란드 통치하에서 럼이 생산되었다는 증거가 있으며 1832년 영국령 가이아나에서는 약 150만 갤런의 럼을 생산했다고 알려져 있다. 자메이카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적은 양이었지만 불과 30년 만에 320만 갤런의 럼을 생산하여 뛰어넘었다. 생산된 럼 대부분은 영국으로 운송되어 해군 럼(British Navy Rum)의 주요 구성 요소로서 활용되었다.
19세기 초 연속식 증류법이 발명되기 이전부터 네덜란드인들은 가이아나에서 팟 스틸로 알려진 배치 증류법을 고안하여 럼을 생산했다. 팟 스틸은 전체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워시(Wash)가 가열되는 주전자 모양의 목 부분(Kettle)이 금속일 필요는 없었다. 그 당시 식민지 가이아나에서는 금속 자체가 귀중했기 때문에 현지에서 용이하게 수급할 수 있는 그린하트 우드(Greenheart Wood)를 목 부분으로 활용했다. 이 나무는 내구성이 뛰어나고 습한 환경에서도 잘 썩지 않아 증류기의 일부분으로서 매우 적합했다.
일반적인 금속 재질의 팟 스틸과 구분하기 위해 뱃 스틸(Vat Still)이라 불렀다. 이러한 스타일의 증류기 하나는 포트 무란트 스틸, 다른 하나는 베르사유 스틸로 이어진다. 이후 더 효율적이고 연속적인 컬럼 스틸(Column Still)이 영국령 가이아나에 도입되면서 더 많은 양의 럼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을 1880년경 설치된 엔모어 스틸이다. 컬럼 스틸이 도입되었음에도 약 30년 동안 팟 스틸은 여전히 전체 럼 생산량의 60%를 유지했다.
- Port Mourant Double Wooden Pot Still
- Versailles Single Wooden Pot Still
- Enmore Wooden Coffey Still
컬럼 스틸이 점차 상용화되면서 몇 가지 부작용이 일어났다. 컬럼 스틸을 사용하여 생산한 럼은 품질이 낮고 생산량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자메이카 럼의 입지를 서서히 잠식했고, 영국 해군에 훨씬 더 많은 럼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는 무분별한 설탕 공장과 럼 증류소 설립으로 이어졌다. 1908년 영국령 가이아나 총독은 식민지에 44개의 럼 증류소가 운영되고 있다고 보고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기준으로는 매우 많은 것처럼 느껴지나 불과 1세기 전에는 식민지의 농경지를 덮고 있는 수백 개의 소규모 설탕 공장과 럼 증류소가 있었다.
19세기 나폴레옹이 영국에 대한 무역 금수 조치를 시행하자 영국의 주요 수출품인 설탕을 수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때 독일의 학자인 아샤르가 사탕무에서의 설탕 추출법을 발명하자 프랑스는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열대 지역 기반의 작물인 사탕수수 대신 온대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사탕무가 널리 보급되면서 설탕 가격이 폭락했다. 이로 인해 서인도 제도의 수많은 소규모 설탕 농장과 럼 증류소가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후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사탕수수에서 정제한 설탕이 사탕무에서 추출한 설탕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으나 현실은 매우 끔찍했다. 높은 인건비와 시설 유지 비용 그리고 유럽의 사탕수수에 대한 관세 부과와 사탕무에 대한 보조금 지급으로 카리브해에는 사탕수수 농장이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설탕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이제 비용이 많이 들고 수익성이 떨어졌다. 이 중 일부는 더 큰 공장에 자원을 집중하여 살아남았지만 대부분의 소규모 공장들은 대부분 폐쇄되었다. 44개의 럼 증류소는 8개로 통합되었다.
Berbice | Skeldon Distillery |
Blairmont Distillery |
Albion/Port Mourant Distillery | ||
Demerara | La Bonne Intention Distillery | Versailles Distillery |
Enmore Distillery |
Uitvlugt Distillery |
Diamond Distillery |
1880년대에 들어서 "Booker Brothers", "McConnell & Co."이라는 영국 회사가 농업, 상점, 유통, 엔지니어링, 럼 등 설탕 기반의 가이아나 경제에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생존한 8개의 럼 증류소는 가이아나의 설탕 산업이 쇠퇴하면서 "Booker Brothers"에 의해 인수 & 합병을 거쳐 단 3곳만이 남게된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가이아나의 사회주의 정부는 설탕 농장(Sugar Estate)을 운영하는 민간 기업들을 국유화하여 가이아나 설탕 조합(Guyana Sugar Corporation)으로 통합했다. 3곳의 증류소는 각각 DLL, GDL, DDL이 소유했다. 공산정부에 의한 사유재산 몰수를 겪었던 쿠바의 럼 산업과는 달리 가이아나 럼 산업의 소유권 전환은 즉각적이지 않았고 유상으로 분배되었다. 특히 "Booker Brothers"의 독점 체제는 천천히 무너져갔다.
Diamond Liquors Limited (DLL) |
Diamond Distillery (Jessels Holdings) |
Guyana Distillers Limited (GDL) |
Uitvlugt Distillery (Booker Brothers) |
Demerara Distilleries Limited (DDL) |
Enmore Distillery (Guyana Distillers Limited |
1975년 예수 페르소(Yesu Persaud)가 "Diamond Liquors Ltd."의 회장으로 선출되어 약 40년간 가이아나의 럼 산업을 이끌었다. 1983년 "Diamond Liquors Ltd."와 "Guyana Distillers Ltd."의 합병을 추진시켜 "Demerara Distillers Ltd."를 출범시켰다. 1980년대 중반 정부의 재정 악화로 "Demerara Distillers Ltd."을 포함한 설탕 산업 전반에 대한 정부 지분을 천천히 줄여나갔다가 종국에는 민간 기업에 완전히 매각했다. 민영화를 거친 "Demerara Distillers Ltd."는 효율성을 위해 다른 두 증류소를 차례대로 폐쇄하고 주요 설비를 다이아몬드(Diamond) 증류소로 이전하게 되면서 가이아나 최후의 럼 증류소가 되었다.
1990년대 초, 정부의 통제에서 해방되어 활력을 얻은 "Demerara Distillers Ltd."는 엘 도라도(El Dorado) 브랜드를 출시하여 본격적으로 럼을 판매 & 홍보하기 시작했다. 2012년 마스터 디스틸러인 조지 로빈슨(George Robinson)이 세상을 떠나고 슬하에서 수년간 일을 배운 숀 칼렙(Shaun Caleb)이 회사를 이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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