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sine Sucrerie-Distillerie du Galion (SAEM)
통칭 갈리옹 공장(L'Usine du Galion)은 포르 드 프랑스(Fort de France)에서 마을로 진입하기 약 1km 전인 트리니떼(Trinité)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마르티니크에서 현재까지 가동 중인 마지막 설탕 공장이다.
18세기 이 지역의 거의 모든 땅을 소유했던 뒤뷕(Dubuc) 가문은 자신들의 사유지를 아비타시옹 르 갈리옹(Habitation Le Galion)라고 불렀다. 1861년 생 피에르(Saint Pierre) 시의 상인이었던 외젠 외스타슈(Eugène Eustache)는 자신의 오래된 설탕 농장이 급격하게 노후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사탕수수의 중심지였던 그랑 퐁(Gradns-Fonds)과 르 갈리옹 사유지를 매입하여 설탕 공장을 짓고 가동했다.
1870년대 설탕으로 인한 이윤 덕분에 그는 공장 건설에 대한 대출금을 미리 갚을 수 있었다. 그는 공장에 대량의 사탕수수를 공급하기 위해 농업 단지를 건설하려고 보르 드 메르(Bord-de-Mer), 데마리니에르(Desmarinières), 모른 갈바(Morne-Galbas), 말그레 뚜(Malgré-Tout), 퐁 갈리옹(Fonds Galion), 미뇨(Mignot) 같은 주변의 모든 농장을 체계적으로 구입하기 시작했다. 총 2,344헥타르 규모의 광대한 사유지 및 농장은 공장 가동에 필요한 모든 원료를 제공했다. 외젠 외스타슈는 1883년 3월 6일 서인도제도의 설탕 경제를 강타한 대공황 직전에 사망했다.
1883년 사위인 에밀 부르쥬노(Émile Bourgenot)가 공장과 사유지를 인수했지만, 갑작스럽게 설탕 위기가 터졌다. 거의 20년 동안 지속된 설탕 위기는 마르티니크의 사탕수수 농장 1/3을 파산으로 내몰았다. 1892년 에밀 부르쥬노는 즉각 다른 모든 공장의 관리를 포기하고 트리니다드 출신의 백인 크레올인 죠셉 드 라귀아리그(Joseph de Laguarigue)를 공동 관리자로 위임하여 르 갈리옹(Le Galion) 공장의 운영을 맡겼다. 에밀은 프랑스로 돌아가 공장 관리에 대해 계속 주시했다.
1905년 설탕 위기가 마무리되면서 르 갈리옹은 역경을 극복하고 수익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사탕수수 분쇄기의 용량을 늘리고 장비를 갱신하며 여러 사탕수수 농장을 인수하기 위해 상당한 투자가 이루어졌다.
1차 세계대전동안에는 술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았다. 많은 공장들이 수익성이 더 좋은 럼 생산에 전념하기 위해 점점 더 설탕 생산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마르티니크에서의 설탕 생산이 점차 붕괴되기 시작했다. 르 갈리옹의 경우 설탕 생산 정책은 더 신중했고, 운영을 수익성에 초점을 맞춰나갔다. 전쟁의 끝은 럼 시장에 대한 붕괴와 공장들 사이에 분배된 할당량의 확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많은 소형 증류소들이 파산했다.
1920년부터 대도시의 팽창과 설탕무 산업의 파괴로 인해 설탕 소비량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르 갈리옹은 철도 재건, 철도 차량 증설 등 장비의 현대화로 설탕 생산량을 높여 호황을 누렸다.
에밀 부르쥬노가 사망한 뒤, 공장의 운영은 관리자의 아들이었던 루이 드 라귀아리그(Louis de Laguarigue)가 책임지게 되었다. 1930 ~ 1939년의 위기는 경기 침체를 일으켜 공장에 많은 손실을 안게 했다. 다행히 설탕 시럽의 수요 증가로 균형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설탕 시럽마저 가격이 폭락하자, 르 갈리옹은 사실상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럼인 그랑 다롬(Grand Arôme)으로 손실을 상쇄했다.
1930년 155개에 달하던 소규모 럼 증류소들은 1937년 120개로 줄어들었다. 회복은 1937년 시작되었고, 2차 세계대전과 함께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르 갈리옹은 급격하게 변동하는 국제 상황에 맞추어 따라가기 위해 수확량을 늘리는 체계적인 정책을 펼쳤다. 새로운 설비와 더 강력한 발전기가 설치되었고, 새로운 종류의 당분이 더 풍부한 사탕수수(BH 10-12)가 도입되었으며, 트랙터와 기계 그리고 비료의 사용이 이루어졌다.
1949년 칼 펠르(Carl Pelle)의 손자가 공장과 그 사유지를 물려 받았다. 그리고 "Exploitation Agricole du Galion" 회사를 설립했다.
1973년 레미 코앵트로(Rémy Cointreau) 그룹은 생트 마리(Sainte Marie)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 증류소와 르 갈리옹 공장을 인수했다. 1984년 다시 마르티니크 지방 당국에 매각되었으며, SAEM Production Sucrière et Rhumière de la Maritnique라는 이름의 합자 회사로 재구성되었다. 그 후 20년 동안 적자를 겪었으나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 계속 유지되고 있다.
2003년 SAEM PSRM은 라 마르티니께즈(La Martiniquaise)의 지주회사인 COFEPP와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사탕수수의 수확은 3 ~ 6월에 진행된다. 증류소에 갓 베어낸 사탕수수가 도착하면 즉시 세척, 절단, 분쇄 과정에 들어간다. 일부는 설탕 추출을 위해 설탕 공장으로 보내지고, 일부는 럼을 증류하기 위해 발효 탱크로 들어간다. 이 과정 중에 얻은 부산물인 바가스(Bagasse)는 보일러에 공급하는 연료로 사용된다.
주로 그랑 퐁 갈리옹(Grand Fond Galion), 르 갈리옹(Le Galion), 그랑 다롬(Grand Arôme) 세 가지 유형의 럼을 생산한다. 특히 그랑 다롬 럼은 마르티니크 내의 르 갈리옹 증류소에서만 생산되는 독점적인 제품이며, 강렬한 향과 높은 에스테르 함유량으로 유명하다. 식품 산업(설탕에 절인 과일, 아이스크림) 또는 향수에도 사용된다. 대부분의 원액은 "E&A Scheer"와 같은 럼 블렌더에 대량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일부 독립 병입자들(S.B.S & The Nectar etc..)에서만 제품을 찾아볼 수 있다.
마르티니크의 지리적 표시에 따르면 그랑 다롬 럼은 최소 800 gr의 휘발성 물질(에틸알코올/메틸알코올 제외)과 최소 500 gr/hlAA의 에스테르 함량을 가져야 한다. 또한 판매를 위해서 알코올 도수가 최소 40% 이상이어야 한다. 매쉬(Mash)는 물과 당밀 그리고 그 잔여물로만 만들어져야 하며, 당밀의 당도(Brix)는 45% 이하여야 한다.
나무로 된 개방형 탱크에서 최소 168시간 동안 발효하면 알코올 도수 약 5.5%를 가진 발효액이 생성된다. 발효액은 최소 15개의 플레이트(Plates)와 5 ~ 9개의 트레이(Trays)가 있는 있는 구리로 이루어진 컬럼 스틸(Copper Column Still)에서 증류된다. 증류액의 알코올 도수가 90%를 초과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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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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