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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y/Distillery & Brand32

도멘 도헝상(Domaine d'Aurensan), 유령 품종과 투명성 Domaine d'Aurensan 도멘 도헝상(Domaine d'Aurensan)은 테나레즈(Ténarèze) 지역에 있으며, 그중에서도 점토 석회암 토양 7헥타르로 이루어진 포도밭에 위치해 있다. 19세기말부터 아르마냑을 생산해 온 이 생산자는 오랫동안 멜리에 생 프랑수아(Meslier St. François) 품종으로 포도원 대부분의 구획을 유지해 왔으나 수익 문제로 인해 많은 구획을 위니 블랑(Ugni Blanc)으로 전환해야했다. 이후 전직 향수 업계 임원이었던 카롤린 로제(Caroline Rozès)가 고향으로 돌아와 거의 사라진 포도 품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독특한 탐구에 착수했다. 우선 6개의 유령 품종(Meslier St. François, Plant de Graisse, Mauzac.. 2023. 4. 17.
발레앙 테시니에(Vallein Tercinier), 자가 생산자이자 증류업자이자 떠오르는 신흥 네고시앙 Vallein Tercinier 1480년 테시니에(Tercinier) 가문의 시조인 로방 테시니에(Robin Tercinier)가 프랑스 꼬냑 지방의 생통쥬로 이주했다. 1791년 가문의 후손인 루이 발레앙(Louis Vallein)이 꼬냑 꼬뮌에서 서쪽으로 약 30km 떨어져 있는 셰르미냑(Chermignac)의 도멘 데 포르쥬(Domaine des Forges)를 구입했다. 주변 마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이 사유지는 일반 토지와 포도밭으로 구성되어 있어 와인을 양조하기에 매우 적합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 나폴레앙 발레앙(Napoleon Vallein)은 와인 생산자로 잘 알려져 있다. 1850년 나폴레옹 발레앙의 두 아들 중 한명인 조르쥬 발레앙(George Vallein)이 증류주를 위한 포도.. 2023. 2. 1.
그로페랑(Grosperrin), 좋은 꼬냑을 발굴하려는 열정 Maison Grosperrin 1981년 여름 농장의 노동자이자 양털깎는 사람이었던 장 그로페랑(Jean Grosperrin)은 증류업자가 되었으며 겨울철에 과일을 증류하기 위해 3개의 팟 스틸을 가지고 증류소에서 증류소로 이동하곤 했다. 1991년 그는 구인 광고를 보고 꼬냑 지방으로 떠나 이듬해 꼬냑 중개인이 되었다. 이후 그는 정말 희귀한 배럴을 찾기 위해 꼬냑의 가장 외딴 지역에 있는 작은 양조장으로 떠난다. 1999년 정말 특별한 꼬냑 배럴이 블렌딩을 목적으로 하는 커다란 통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좌절한 장은 한 가지 결심을 한다. 샤랑트(Charente) 마을에서 가족이 대를 이어 물려 받아온 오래된 꼬냑들을 작은 규모로 몇 통 구입하여 각 배럴들이 가지고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 2023. 1. 18.
아드리앙 까뮈(Adrien Camut), 고품질의 페이 도쥬 깔바도스 생산자 Adrien Camut 프랑스 노르망디의 데파르트망인 외르(Eure)에서도 라 랑드 생 레제(La Lande Saint Léger)에 위치한 아드리앙 까뮈(Adrien Camut)는 19세기부터 6대에 걸친 가족 경영으로 뛰어난 깔바도스 자가 생산자(Propriétaire Récoltant)이다. 증류소 자체는 20세기 초에 설립되었다. 지금은 뵈즈빌(Beuzeville) 근처의 도멘 드 세망빌(Domaine de Sémanville)이라는 약 46헥타르의 과수원을 소유하고 있다. 농장은 엠마뉘엘(Emmanuel)과 장 미셸(Jean-Michel) 및 장 가브리엘 까뮈(Jean Gabriel Camut)가 공동 관리하고 있다. 아드리앙 까뮈의 장수 비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련되고 완벽해진 생산 기술의.. 2022. 11. 26.
장-뤽 파스케(Jean-Luc Pasquet), 전통과 트렌드를 겸비한 꼬냑 생산자이자 네고시앙 Jean-Luc Pasquet 1730년 세리예(Serillet) 가족이 지금의 도멘 파스케(Domaine Pasquet)에 정착하여 포도를 재배했다. 그 후 몇 세대에 걸쳐 대형 꼬냑 메이커를 위한 와인을 만들다가, 1924년 파스케(Pasquet) 가족에게 포도원이 계승되었다. 장-뤽(Jean-Luc)은 그의 삼촌인 알베르(Albert)의 상속인이 되었고, 이후 그랑 샹파뉴와 쁘띠 샹파뉴의 8헥타르로 이루어진 포도밭과 주거 시설 그리고 증류기를 포함한 증류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장-뤽은 증류소와 포도원을 운영하면서 그가 하는 일을 사랑하게 되었고, 어머니인 마리 프랑수아즈(Marie Françoise)와 함께 포도주 양조를 배웠다. 이후 1970년, 날씨가 화창해 수확이 좋았던 것을 계기로 빈티지를 .. 2022. 9. 22.
라뇨 사브랑(Ragnaud-Sabourin), 미래를 설계하는 그랑 샹파뉴의 보물 Ragnaud-Sabourin 1860년 라뇨 가족은 꼬냑 지방의 샤랑트(Charente) 지역에 정착했다. 그랑 샹파뉴(Grande Champagne) 중심부의 작은 포도원을 소유했던 이들 가족은 오드비를 생산했다고 알려져 있다. 1920년 라뇨 가문의 폴 라뇨(Paul Ragnaud)는 앙블빌(Ambleville) 마을에 정착하여 사유지 및 포도밭을 구입했다. 사후 그의 유산 절반은 아들인 레이몽 라뇨(Raymond Ragnaud)에게 돌아가 아버지 폴 라뇨의 꼬냑 사업을 이어받게 했다. 나머지 절반은 마르셀 라뇨(Marcel Ragnaud)에게 물려주었다. 1850년 브리앙 가족은 도멘 드 라 부트(Domaine de La Voûte)의 작은 포도원을 운영하며 오드비를 증류했다. 마르셀 라뇨는 가스.. 2022. 7. 18.
미셸 위아(Michel Huard), 전통적인 깔바도스 생산자 Michel Huard 깔바도스 남서쪽 쉬스 노르망드(Suisse Normande)의 가장자리인 칼리니(Caligny)와 몽틸리 쉬르 누아로(Montilly sur Noireau) 지역에 자리잡은 위아(Huard) 가족은 7대에 걸쳐 농장을 일구고, 가축을 키우는 전통적인 혼합 농업을 해왔다. 하지만 1950년대 5대째인 미셸 위아(Michel Huard)를 시작으로 깔바도스를 생산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할아버지를 따라 장 프랑수아 귀우에 위아(Jean-François Guillouet-Huard)는 2004년에 유산을 인수하고, 자신의 기술에 대한 열정과 할아버지의 지식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미셸 위아라는 브랜드를 통해 전임자들의 업적을 기리기로 결정했다. 약.. 2022. 4. 10.
프라팡(Frapin), 그랑 샹파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단일 생산자 Maison Frapin 1270년 프라팡 가문의 선조들이 샤랑트(Charente) 지역에 위치한 세공작(Ségonzac) 마을에 도착했다. 당시 마을 주변은 포도밭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많은 와인 양조업자들이 있었다. 프라팡 가족은 현재 앙굴렘(Angoulême)이라고 불리는 앙구무아(Angoumois) 마을에 터를 잡고 포도원을 경작하기 시작했다. 1494년 안느 까뜨린 프라팡(Anne-Catherine Frapin)과 앙투안 라블레(Antoine Rabelais) 사이에서 그 유명한 저술가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가 탄생했다. 라블레의 조카는 이후 "Maître Queux-Sommelier"로 임명되어 황실 부엌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받았다. 1697년 루이 14세는 자신의 담.. 2022.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