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lein Tercinier
1480년 테시니에(Tercinier) 가문의 시조인 로방 테시니에(Robin Tercinier)가 프랑스 꼬냑 지방의 생통쥬로 이주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1791년 가문의 후손인 루이 발레앙(Louis Vallein)이 서쪽으로 약 30km 떨어져 있는 셰르미냑(Chermignac)의 도멘 데 포르쥬(Domaine des Forges)를 구입했다. 주변 마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이 사유지는 일반 토지와 포도밭으로 구성되어 있어 와인을 양조하기에 매우 적합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 나폴레옹 발레앙(Napoleon Vallein)은 와인 생산자로 잘 알려지게 된다.
1850년 나폴레옹 발레앙의 두 아들 중 한명인 조르쥬 발레앙(George Vallein)이 증류주를 위한 포도를 재배하기 위해 새로운 포도원을 구입한 것을 계기로 꼬냑 업계에 직접적으로 발을 들이게 된다. 그는 총 130헥타르의 부지중 25헥타르에 포도나무를 심었고, 80헥타르에는 전통적인 작물들을 심었다고 한다.
조르쥬 발레앙은 이 가족 사업을 꾸준히 확장했으며 와인 및 증류주를 수출하기 위해 무역 회사를 설립하고 상업적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1930년이 되어서야 그는 지역의 소규모 증류소인 마르셀 꼬뜨로(Marcel Cottereau)와 협력하여 현재 생트-마리(Sainte-Marie) 근처의 플레상스(Plaisance)라는 마을에 증류소를 설립하고 4개의 증류기를 설치했다. 이후 르사쥬(Lesage)와도 협력하면서 한동안 "Lesage-Vallein et Cie"라고 불리기도 했다.
증류소에서 생산된 오드비의 대부분은 큰 규모의 블렌더인 "Rémy Martin"에 판매했으며 생산분의 일부는 조르쥬의 가까운 친구였던 까미유 뒤퓌(Camille Dupuis)에게 위탁 판매했다. 1920년까지 독신으로 남아있던 조르쥬의 아들인 폴 발레앙(Paul Vallein)은 까미유의 브랜드를 인수하여 다양한 제품군을 병입했다.
- C. Dupuis & Fils
- J. Monternot
- Richard & Pailloud
- J. Sorin & Co.
- Paul Morache & Co.
여동생인 에디뜨(Edith)는 결혼하여 아들 루이 테시니에(Louis Tercinier)를 낳았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폴 발레앙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와 조카인 루이 발레앙과 함께 가족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전쟁 직후였기 때문에 자체 브랜드를 계속해서 발전시키기보다는 "Rémy Martin" 또는 "Courvoisier" 와 같은 대형 하우스들을 위해 오드비를 생산하고 납품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큰 고난 없이 물 흐르듯 지나갔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점령 때는 다르게 흘러갔다. 조르쥬는 마을의 시장이었기 때문에 독일인에게 복종해야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공동체를 보호해야 했기에 힘든 시기를 보낸다. 다행히 독일인들은 자산의 일부를 훔쳐가거나 작업을 도와주는 등 그 외의 가혹한 폭력은 없었으나 오히려 해방이 되자 영웅 대접을 받기 시작한 "La Compagnie Violette" 라는 그룹이 나타나면서 가문에 커다란 위기로 다가왔다. 이 그룹은 레지스탕스 출신에 다수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으나 극히 일부는 매우 질이 나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나치 부역자라는 미명하에 폴 발레앙을 고문하고 죽였다. 당시 시장이었던 조르쥬는 기소되어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별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그 슬픈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이후 "Vallein Tercinier Lot.40 Bons Bois Hommage Paul Vallein"이라는 꼬냑을 출시했다.
해방 후 1947년부터 루이 발레앙은 해외에서 돌아와 아버지 로베르 발레앙(Robert Tercinier)과 함께 사업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1960 ~ 1980년 사이 소규모 가족 생산자들 대부분 "Rémy Martin" 및 "Courvoisier"와협력한 만큼 그들도 블렌더들에게 생산한 오드비 대부분을 판매했다. 발레앙 가족이 소유한 약 20헥타르의 포도밭을 커버하는 데 있어서 단 2개의 증류기(Alembic Charentais)면 충분했기 때문에 이들 가족은 다른 생산자의 포도 또는 와인을 사서 증류하기도 했다. 이후 대형 하우스에 지속적으로 납품할 만큼 많은 양의 꼬냑을 생산하게 되면서 알람빅은 8개까지 늘어난다. 자체 브랜드 병입을 발전시킨 것은 아들 루이 테시니에(Louis Tercinier) 때부터였으니 여분의 숙성 재고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1976년 로베르 테시니에가 사망하면서 가족들이 함께 운영했다. 1990년에 들어서 생산 쪽은 아들 루이 테시니에가 그 외의 부문은 딸인 까뜨린 루디에-테시니에(Catherine Roudier-Tercinier)가 담당하기 시작했다. 두 자녀 모두 조상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각 가문의 이름을 합쳐 발레앙 테시니에(Vallein Tercinier)라는 자체 브랜드를 기획했으며 VS, VSOP, Napoleon, Xo, Hors d’Age와 같은 고전적인 스타일의 블렌드를 지속적으로 사용했다.
1992년 발레앙 테시니에의 꼬냑이 "Pierre Balmain"에 공급되도록 선택됨에 따라 회사의 글로벌 유통 능력과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다양하게 형성할 수 있었다. 1980년대부터 새로운 판매점을 찾아야 했던 발레앙 테시니에의 입장으로서 좋은 평판을 얻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덕분에 유럽 시장을 통합하는 동시에 아시아로서의 수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이것이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어 "Grosperrin"의 파스칼 바지오(Pascal Bajiot)와의 만남이 주선되었다.
파스칼 바지오는 피노 데 샤랑트(Pineau des Charentes)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발레앙 테시니에의 하우스를 방문했고, 거기서 우연히 "Lot.65"라 불리는 그랑 샹파뉴 원액을 맛보고서는 당장 블렌딩 판매를 중단하고 자체적인 병입으로 단독 판매해야 한다고 까뜨린에게 조언한다. 당시 영업사원과 일하고 있었던 까뜨린은 그에게 한 번 시도해보자고 말했다. 그들은 그것을 "La Maison du Whisky"에 소개했으며 "Whisky Fun"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세르쥬 발랑틴(Serge Valletin)에게 샘플을 제공했다.
어느 날 컴퓨터를 열어본 까뜨린은 특정 제품 하나에 대한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이메일 주문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르쥬 발랑틴이 "Lot.65" 병입에 대해 정말 좋은 리뷰를 작성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많은 팔로워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즉시 많은 판매 실적로 이어졌다.
이것을 계기로 그녀는 빈티지 그 자체로로 마실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다른 꼬냑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셀러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다양한 "Brut de Fût"와 "Millésime" 꼬냑을 생산하기 시작한 방법이다. 최고 품질이 아닌 제품을 출시하느니 차라리 신제품을 출시하기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이때부터 회사의 시설은 고급 꼬냑을 생산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조정되었다.
까뜨린과 루이가 이끌어 가고 있는 이 회사에 6대째인 스테판 루디에(Stephane Roudier)가 2010년부터 합류했으며 셀러 마스터로는 푸코 드 망디뜨(Foucauld de Menditte)가 활동하고 있다. 스테판 루디에는 기존의 23헥타르 포도원 외에 12헥타르의 포도원을 더 임차했다. 과거 할아버지인 로베르 발레앙이 심었던 포도나무들은 아주 오래되었기 때문에 포도밭의 절반 이상을 젊은 위니 블랑(Ugni Blanc)으로 다시 심기 시작했다.
발레앙 테시니에 소유의 포도원은 봉 부아(Bons Bois) 지역의 셰르미냑(Chermignac) 마을과 팡 부아(Fins Bois) 지역의 떼냑(Thenac) 마을에 걸쳐있기 때문에 포도나무의 1/4는 봉 부아에 3/4는 팡 부아에 위치한다.
증류소는 셰르미냑 마을의 도멘 데 포르쥬(Domaine des Forges) 사유지에 위치해 있으며 8개의 샤랑테 팟 스틸(Alembic Charentais)을 소유하고 있다. 약 20헥타르의 포도원에서 나오는 포도를 이용해 오드비를 생산하며 주로 트롱세(Tronçais) 오크에 숙성한다.
Domaine des Forges (20 hectares)
- Fins Bois
- Bons Bois
증류소에서 직접 증류한 대부분의 오드비는 "Audry"와 같은 네고시앙에 판매하기 때문에 발레앙 테시니에는 부이외 드 크뤼(Bouilleur de Cru) 즉 증류업자라고 할 수 있으며 자사 브랜드의 원액을 포도 수확부터 병입까지 진행하는 자가 생산자(Propriétaire Récoltant)면서도 다른 크뤼(Cru)의 포도, 와인, 오드비, 숙성 배럴 등을 구입해 자체적으로 숙성 & 병입 하는 네고시앙(Négociant)이다.
그랑 샹파뉴(Grande Champagne) 및 쁘띠 샹파뉴(Petite Champagne) 원액은 과거서부터 거래해온 생산자로부터 지속적으로 공급받고 있으며, 보더리(Borderies) 및 팡 부아(Fins Bois) 원액은 다양한 생산자로부터 구입한다.
다른 크뤼의 생산자로부터 구매한 오드비는 발레앙 테시니에라는 브랜드를 통해 블렌드와 싱글 크뤼 꼬냑으로 병입한다. 싱글 캐스크를 위한 제품 대부분은 물을 희석하지 않은 "Brut de Fût"로 병입된다. 발레앙 테시니에는 현재 아래와 같은 하위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 C. Dupuis & Fils
- J. Monternot
- Richard & Pailloud
- J. Sorin & Co.
- Paul Morache & Co.
- Lormin (Grande Champagne)
- Roland de Meriac (Fine Champagne)
2014년부터 매해 새로운 빈티지를 출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꼬냑에 빈티지를 표기할 때에는 꼬냑 사무국(BNIC)의 규정에 엄격히 따라야 한다. 당해 년도에 포도를 수확했다는 증거 및 문서가 있어야만 빈티지를 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Lot"은 원액의 평균 연령 혹은 숙성 년도의 추정치를 뜻하기도 하는데 주로 빈티지 증명을 하기에 부정확한 문서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발레앙 테시니에에서는 "Rue"와 혼용하기도 한다.
발레앙 테시니에는 몰트 위스키의 대체재(Malternative)라는 최신 트렌드에 맞춰 "Single Cask", "Millésime", "Brut de Fût" 꼬냑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으며 장-뤽 파스케(Jean-Luc Pasquet)와 같이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Review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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