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tillerie Saint-James (Sainte-Marie)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의 정확한 명칭은 레 플랑타시옹 생 제임스(Les Plantations Saint-James)로 정확한 역사나 기원은 없다. 1713년 브랜디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프랑스에서 캐리비안 럼의 판매를 금지했을 때 영국 고객에게 어필하기 위해 선택되었다는 것이 유력한 가설로 남아있다.
17세기 중반 생 피에르(Saint-Pierre) 시에 위치한 한 가톨릭 수도회 병원에서 시작되었다. 병원 운영 비용은 프랑스 왕실의 보조금으로 충당되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보조금이 계속해서 밀리자 그들은 주택과 상점 그리고 농장 등과 같은 현물을 기증받았다. 또한 당시 마르티니크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설탕이었기 때문에 그것의 생산수단인 설탕 공장을 소유하게 되었다.
수도사들은 설탕 공장에서 설탕을 정제하고 남은 부산물인 당밀을 이용하여 럼을 만들었는데, 럼이라는 명칭 이전에 타피아(Tafia)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었다. 타피아는 설탕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렸다. 때문에 수도사들은 그들의 수익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피아가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해야 했다.
이 조그마한 산업은 생 피에르 시에서 불과 2km에 떨어진 트루-바이양(Trou-Vaillant)이라는 장소에서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1777년 그곳에는 증류기가 설치된, 악마를 죽인다는(초기 화주라 불리는 Aguardiente의 별칭) 증류소가 있었고, 그 근처에는 총용량이 6,500리터 규모의 4개들이 통이 들어있는 타피아 오두막이 존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의 발발로 마르티니크 또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생 피에르에서 수도회의 교부들은 모든 재산을 정부에 양도하게 되었다. 이후 정부는 설탕 공장과 증류소를 포함한 도멘(Domaine)을 개인에게 임대했다. 1828년 에두아르 앙리(Edouard Henri)가 새로이 임명되었고 그의 지도 아래 트루-바이양은 번영하게 된다.
19세기 내내 임대인들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으며 서로를 승계했으나, 노예 제도의 폐지로 중요한 변화가 찾아왔다. 트루-바이양의 소유권은 결국 주 소관에서 마르티니크의 일반 의회(General Council)로 이관되었고 노동력의 상실로 관리가 점점 어려워져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1861년 민영화된 트루-바이양을 폴 드 그로트(Paul de Grottes)와 그의 세 아들이 경매를 통해 구입함으로써 큰 기술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더 생산적이고 경제적인 컬럼 스틸의 개발과 제당 공장의 생산을 중앙 집권화하는 일련의 활동은 19세기 후반 마르티니크가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럼의 1/3을 공급하게 하는 세계 최고의 럼 생산자가 되는 기회로 이어졌다. 또한 프랑스 본토에서 발병한 필록세라 바스타릭스(Phylloxéra Vastarix)는 럼이 와인 기반 증류주를 추월할 수 있게 해 준 발판이 되었다. 덕분에 1882년 마르티니크 섬에는 190여 개에 달하는 럼 증류소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프랑스령 및 영국령 서인도 제도의 럼을 배럴에 담아 가져와 프랑스 대도시에서 판매하던 프랑수아 폴랭 랑베르(François-Paulin Lambert)는 경쟁자들과 자신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그는 운송 중에 파손될 위험이 적은 사각병 디자인을 등록하고, "Rhum des Plantations de Saint James"라는 상표를 등록했다. 그는 사탕수수 주스 가열 공정 & 급속 저온 살균 기술을 개발하여 럼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1890년 그는 세인트 제임스 회사의 소유주가 되었으며 트루 바이양의 농장과 증류소를 모두 구입했다. 그의 획기적인 럼 생산방식은 프랑스를 포함해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02년 마르티니크는 펠레 화산의 폭발로 많은 땅이 황폐화되었고, 30,000명의 목숨을 앗아가 경제적 근간이 흔들렸다. 하지만 트루 바이양은 계곡에 위치했기 때문에 보호받을 수 있었다. 증류소의 쌓인 화산재만 걷어내고는 곧바로 정상화되었다. 랑베르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은 아들들은 공급의 다양화를 위해 럼을 증류하는 다른 여러 농장(l'Acajou, Fonds-Bourlet)을 사들였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한 증류주의 폭발적 수요와 1915년 압생트의 금지와 같은 요인들로 인해 1919년경 183만 리터에 달하는 알코올을 생산할 수 있었다.
1920년 전쟁이 마무리되고 럼 시장이 무너지면서 많은 위험에 처했지만 세인트 제임스는 버텨냈다. 다행히 두 번째 증류소를 증설하여 더 많은 럼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그 명성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1955년 랑베르 가족은 증류소 & 브랜드를 "Caribbean Investment Corporation"라는 금융 그룹에 회사를 매각했다. 1965년 회사의 인프라 현대화와 다양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산했다. 마르티니크의 럼 산업은 증류기의 수입 금지대상 지정과 높은 인건비 그리고 당밀 부족으로 인해 점점 쇠퇴기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유통업체인 "Picon"은 세인트 제임스에 관심을 보였고 전체 산업 구조를 재편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당밀 럼 대신 현지에서만 판매되던 향이 풍부하고 품질이 더 좋은 아그리꼴 럼(Rhum Agricole)으로의 전환을 꾀했다. 많은 비용을 초래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농장 및 토지는 폐쇄하거나 매각되었다.
피콩은 새로운 증류소인 생트 마리(Sainte-Marie)를 건설하기 위해 "Rémy Cointreau"에 인수되었고, 1974년 마침내 새로운 증류소에서 대규모 럼 생산을 시작했다. 이 새로운 모델은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더 이상 사탕수수 주스를 가열할 필요 없이 사탕수수를 매우 신속하고 신선하게 처리하여 좋은 품질의 럼을 대량 생산 할 수 있게 되었다. 2003년 "La Martiniquaise"의 인수를 마지막으로 증류소는 계속 운영 중에 있다.
세인트 제임스는 약 350헥타르의 자체적인 농장에서 증류소가 필요로 하는 사탕수수 양의 80 ~ 85%를 공급한다. 총 10가지 품종의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데, 그중 2 ~ 3개의 갈대 사탕수수(B 59.92)를 주로 재배한다. 대부분 기계를 통해 수확된다. 특정 빈티지를 위해 수요량의 10 ~ 15%는 유기농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외부의 소규모 생산자들로부터 구매한다.
갓 수확된 사탕수수는 증류소에 도착하자마자 무게를 측정한다. 그런 다음 절단기에서 사탕수수를 절단하고 섬유질을 제거한다. 잘게 갈려진 사탕수수는 5개의 삼중 롤러밀로 분쇄 및 압착된다. 여과된 사탕수수 주스는 48,000리터 용량의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24개에 제빵용 효모 및 고유한 효모와 함께 투입하여 38 ~ 40℃로 약 18 ~ 24시간 동안 발효된다. 발효가 끝난 사탕수수 와인은 알코올 도수 약 4 ~ 4.5%를 함유한다.
증류소 내부에는 22 ~ 32개의 트레이(Trays)가 포함된 6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및 구리로 이루어진 크레올 컬럼 스틸(Créole Column Still)과 꼬냑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는 팟 스틸(Alembic Charentais) 1쌍이 있다. 모두 구리로 된 응축기(Copper Condenser)를 사용한다.
알코올 도수 약 70 ~ 73%를 함유하는 증류액은 삼투수를 사용해 가수된다. 휘발성 화합물을 제거하기 위해 증류액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로 옮겨 저어주고 공기를 주입하여 약 6주간 휴지 시킨다. 도수 약 55%의 순수 알코올(LPA)을 연간 400만 리터 이상 생산한다.
세인트 제임스의 사유지에는 30,000 ~ 33,000리터 용량의 거대한 오크통 63개와 16,300개의 작은 오크통으로 구성된 8개의 숙성고가 있다. 숙성고에 안치된 오크통의 90%는 아메리칸 오크 배럴이며, 10%는 프렌치 오크 배럴과 버진 오크 배럴 그리고 꼬냑 & 아르마냑 배럴이 차지한다. 아메리칸 오크 배럴의 경우 대부분 220리터를 초과하지 않으며 프렌치 오크 배럴은 400리터 내외의 용량을 가지고 있다. 그 외 재조립한 650리터 미만의 배럴 등이 있다.
- American Oak (190 ~ 220L)
- French Oak (400L)
- Other Oak (650L)
J.Bally
자크 발리 혹은 제이 발리(J.Bally)라고 하는 이 브랜드는 마르티니크에서 가장 오래된 럼 브랜드 중 하나이며 그 역사는 프랑스인이었던 자크 발리(Jacques Bally)로부터 시작한다. 1902년 펠레 화산의 폭발로 인해 마르티니크의 땅은 대폭락 했다. 때문에 파산한 르 까르베(Le Carbet)의 라쥐스(Lajus) 설탕 농장도 헐값에 나왔는데, 파리 최고의 공학 학교인 중앙공과학교(Ecole Centrale des Arts et Manufactures/ECP) 졸업생이었던 자크 발리가 그곳을 매입하여 증기 기관을 설치하고 가능한 한 회수할 수 있는 장비와 설비들을 수리했으며 증류를 위한 컬럼 스틸을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등 현대적인 증류소로 탈바꿈시켰다.
같은 해 인근의 그로니에(Gronier) 가족이 소유한 아비타시옹 다리스트(Habitation Dariste)가 파산했는데, 1923년 자크 발리는 자신의 설비를 보강하기 위해 그곳을 인수하고 증류 장비를 라쥐로 옮겼다. 지금의 자크 발리 럼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피라미드형 및 사각병은 그의 손에 디자인되었다.
자크 발리는 당시 이미 확립된 꼬냑 생산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최초의 숙성 아그리꼴 럼을 만든 생산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다른 생산자들이 열대 기후로 인한 높은 증발률로 자신들의 럼이 손실되는 꼴을 보지 못하고 화이트 럼으로만 출시했었기 때문에 그것은 혁명이었다. 때문에 다른 모든 증류소가 아이디어를 모방하기 위해 서둘렀다. 자크 발리의 럼은 매우 인기가 높아 잘 팔렸으며 회사는 "Rémy Cointreau"가 인수한 1980년대까지 사업을 이어나갔다.
이후 라쥐스 설탕 농장에서의 럼 생산이 중단되었고 1986 ~ 1989년 사이 그 역할은 르 시몽(Le Simon) 증류소로 이전되었다. 물론 기존의 증류기는 그대로 재배치되었기 때문에 생산 방식에서 크게 변경되지는 않았다.
10년도 지나지 않아 자크 발리의 생산은 세인트 제임스 증류소로 이전되었다. 하지만 증류기는 더 이상 럼을 생산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폐기되었다. 2003년 "La Martiniquaise"는 세인트 제임스와 자크 발리를 인수했다. 오늘날 자크 발리의 원주는 고유한 레시피를 통해 세인트 제임스 증류소의 크레올 컬럼 스틸에서 생산되고 있다.
Review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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