軽井沢 (Karuizawa) & 川崎 (Kawasaki)
20세기 중반, 서양과의 접촉이 증가하여 와인을 비롯한 여러 양주들이 일본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1934년 이러한 영향으로 미야자키 코타로(宮崎光太郎)가 수입을 위해 다이코쿠 부도슈(大黒葡萄酒)를 설립했다. 이후 타카라 슈조(宝酒造)가 경영에 참여함에 따라 주력 사업인 와인 판매 실적이 호조를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연합군 최고 사령부(GHQ)의 일본 내 정책의 일환으로 다이코쿠 부도슈는 타카라 슈조와 분할되었다. 1947년 미야자키 코타로가 사망하자 동명의 손자가 사업을 계승하여 사장으로 취임한 뒤 위스키 사업에 뛰어든다. 그는 1950년대 초까지 도쿄 공장을 통해 몰트를 사용하지 않는 3급 위스키를 생산했으나, 그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요이치 증류소에서 구입한 일부 몰트 위스키와 3급 위스키를 혼합하여 오션 위스키(オーシャンウイスキー)를 출시했다.
요이치 증류소로부터 구입할 수 있는 원주도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다이코쿠 부도슈는 직접 몰트 위스키를 생산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당시 증류 면허의 신규 부여를 허용치 않는다는 관청의 입장으로 인해 새로운 증류소를 설립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위스키를 생산하는 데에 결코 좋은 입지는 아니었지만 이미 브랜디의 증류와 생산 실적 그리고 주류 면허를 가지고 있던 시오지리(塩尻) 공장에 직원을 파견하여 몰트 위스키 증류소로 용도를 변경했다. 1952년 3월 29일부터 증류소 운영에 들어갔으나 부족한 수원, 물의 품질, 발효 문제 등 다양한 요인으로 알코올의 생산성이 극도로 저하되기 시작했고 생산한 원주의 품질이 계속해서 열화 되어 갔다.
좋지 않은 품질의 위스키 생산에 한계를 느낀 회사는 풍부한 수원과 충분한 부지 그리고 폐수 처리시설이 위치한 나가노현(長野県)의 휴양 도시 가루이자와(軽井沢)를 이전 후보지로 낙첨하고 1955년에 가루이자와 증류소 건설을 시작했다. 이전의 실패를 반성삼아 대부분의 설비를 개선한 뒤 1956년 2월 중순부터 증류소를 가동한다.
가루이자와 증류소는 비교적 다른 곳들에 비해 위스키 생산자로서 후발 주자였기 때문에 몰트 공급에 차질이 있었다. 국내 농가의 보호를 위해 외국산 농산물의 수입이 엄격히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1958년 이후 단계적으로 외국산 보리 또는 몰트의 수입규제가 완화되면서 1961년에는 외국산 몰트 절반과 국산 몰트 절반을 혼합하여 위스키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1959년에는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고 골든 프로미스 품종과 아사마(浅間山) 산의 화산 여과수 그리고 셰리 캐스크의 사용 등으로 위스키 생산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뉴 메이크 스피릿의 품질이 대폭 향상되었다. 덕분에 가루이자와 증류소의 원액은 다이코쿠 부도슈의 오션 위스키에 대량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전체 매출의 약 59%를 위스키가 차지했다. 1961년 이러한 연유로 다이코쿠 부도슈는 이후 회사명을 오션(オーシャン)으로 변경했다.
- Golden Promise 100% / Asama-yama's River-Bed Water
- 1,200L(1,000L) Full-Lauter Type Mash Tun x1
- Douglas Fir (Oregon Pine) Washback x5 / 72 ~ 120h Fermentation
- 4,000L Miyake's & Forsyths Wash Still x2 / Steam Coil / Shell-and-Tube Condenser
- 4,000L Miyake's & Forsyths Spirit Still x2 / Steam Coil / Shell-and-Tube Condenser
- Spain Jerez Ex-Sherry Cask -> Mercian's Sherry Seasoned Cask (450L)
- Dunnage Warehouse & Racked Warehouse
1934년 아지노모토 창립자의 차남인 스즈키 타다하루(鈴木忠治)는 대두를 원료로 하여 알코올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쇼와 슈조(昭和酒造)를 창업하여 이듬해 가와사키(川崎) 공장을 설립했다. 주로 합성 청주를 생산했으며 사업은 성공 가도를 달렸다. 1947년 회사는 산라쿠(三楽)라는 주류 브랜드를 만들어 "Sun Luck Whisky"를 출시했다.
1949년 쇼와 슈조는 산라쿠 슈조(三楽酒造)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위스키 산업에 뛰어들었다. 1958년 가와사키 공장에서 몰트 위스키를 생산했으며 이듬해에 “Sun Luck Gold”와 “Sun Luck Corrie”를 출시했다.
1961년 가와사키 공장의 생산 용량이 한계에 다다르자 산라쿠 슈조는 일부 설비를 이전하여 야마나시(山梨) 증류소를 설립했다. 야마나시 증류소 부지에 와이너리도 함께 건설할 예정이었으나, 대신 닛신 브루어리(日清ブルワリー)와 자회사인 메르시안(メルシャン/Mercian)을 인수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닛카(ニッカ)와 산토리(サントリー)와의 위스키 출혈 경쟁이 가속화된다. 오션은 마케팅 비용의 증가로 재정적인 압박을 받았으나 대표적인 위스키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고, 산라쿠 슈조는 전국적인 판매망과 저렴한 주정을 제조할 수 있는 설비를 가졌으나 이렇다 할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1962년 이해관계가 부합되면서 오션과 산라쿠 슈조는 경영을 통합하여 회사명을 산라쿠 오션(三楽オーシャン)으로 변경했다.
가루이자와 증류소와 야마나시 증류소는 별개로 운영되었으나 야마나시 증류소의 원주에서 품질 저하를 발견하게 된다. 당시 구리로 된 팟 스틸을 사용하던 가루이자와 증류소와는 달리 야마나시 증류소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이루어진 팟 스틸을 사용했기 때문에 증류액의 황(Sulfur) 성분을 제대로 흡착하지 못하여 이상한 향미를 풍겼다고 한다. 여러 개선책이 시도되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고 결국 야마나시 증류소는 폐쇄에 들어갔다. 중간중간에 일시적으로 생산을 재개했으나 이후에는 숙성고로 완전히 변경되었다. 1964년 야마나시 증류소의 생산 용량을 받아내기 위해 가루이자와 증류소의 설비가 확충되었다.
전후 일본의 위스키 시장은 저렴한 2급 위스키와 3급 위스키가 주를 이루었던 반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가 성장하고 소비자들이 보다 부유해지면서 1급 위스키와 특급 위스키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위스키 수입도 완전히 자유화되면서 고품질의 수많은 스카치 위스키가 시장에 풀렸다. 스카치 위스키는 몰트 원주와 그레인 원주가 혼합된 블렌디드 위스키가 대부분이었는데, 일본 위스키는 몰트 원주와 주정을 혼합한 것으로 맛에 큰 차이가 있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67년 산라쿠 오션은 스코틀랜드에 기술자를 파견하여 배워오도록 했으며 1969년에는 연속식 증류기인 코페이 스틸(Coffey Still)을 가와사키 공장에 설치하여 그레인 위스키 생산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품질이 좋지 않았지만 점차 노하우가 쌓이면서 스코틀랜드와 유사한 스타일의 그레인 위스키를 생산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가루이자와 증류소도 생산 설비를 개조 및 확충하여 생산 용량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1976년 일본 최초의 싱글 몰트 위스키인 가루이자와 싱글 몰트 위스키(軽井沢シングルモルトウイスキー)를 출시했으며 이듬해에 고급 블렌디드 위스키인 아사마(浅間)를 출시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위스키 시장은 가루이자와 같은 무거운 위스키보다 가볍고 부드러운 술이 인기를 얻는다. 이후 버블 경제의 붕괴로 값비싼 증류주 대신 저렴한 와인의 수요가 증가하고 소주에 대한 갈망이 커지면서 위스키 산업이 침체되기 시작했다. 산라쿠 오션은 위스키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1985년에는 산라쿠(三楽)로, 1990년에는 메르시안(メルシャン)으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위스키 수요는 회복되지 않았고 생산이 단계적으로 축소되었다. 1997년 아지노모토 가문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했던 스즈키 가문의 권력 투쟁 문제가 심화되자 2000년경 가루이자와 증류소는 폐쇄되었다. 2003년 메르시안의 공장 재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와사키 증류소가 폐쇄되었으며 그 기능은 후지사와(藤沢) 공장으로 이전되었다. 가와사키 증류소의 폐쇄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벤처 위스키(ベンチャーウイスキー)의 아쿠토 이치로(肥土伊知郎)는 하뉴의 몰트 원주와 혼합할 그레인 원주를 수급하기 위해 가와사키의 숙성 재고 몇 통을 구입하기도 했다.
메르시안은 2006년 기린 홀딩스(キリンホールディングス)의 연결 자회사로, 2010년에는 완전 자회사로 편입되었고 현재는 기린 그룹 산하에서 와인 산업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다. 기린에서 판매되고 있는 위스키에서는 "Ocean Lucky Gold"만이 유일하게 오션의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 1956 ~ 1961 軽井沢 (大黒葡萄酒)
- 1961 ~ 1962 軽井沢 (オーシャン)
- 1934 ~ 1949 川崎 (昭和酒造)
- 1949 ~ 1962 川崎 (三楽酒造)
- 1961 ~ 1964 山梨 (三楽酒造)
- 1962 ~ 1985 軽井沢 & 川崎 (三楽オーシャン)
- 1985 ~ 1990 軽井沢 & 川崎(三楽)
- 1990 ~ 2000/2003 軽井沢 & 川崎 (メルシャン)
- 2006 ~ メルシャン (キリンホールディングス)
기린은 메르시안의 와인 사업체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루이자와 증류소는 수년간 방치되었고, 현금 흐름을 창출하기 위해 약 350개의 오크통이 이름 없는 블렌디드 위스키 브랜드에 사용될 예정이었다. 2010년 일찍이 가루이자와의 위스키 샘플을 마셔보고는 그 잠재력을 알고 있었던 "Number One Drinks Company"의 마신 밀러(Marcin Miller)는 공동 창업자인 데이빗 크롤(David Croll)과 함께 기린에 가루이자와 증류소 인수를 타진했다. 또한 여러 독립 병입자들도 동시에 뛰어들었으나 기린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듬해 마음을 바꾼 기린은 가루이자와의 숙성 재고 350통을 모두 “Nuber One Drinks Company”에 매각했다. 유럽으로 가루이자와의 싱글 몰트를 수입한 그들은 전설적인 1960년 빈티지를 시작으로 다양한 빈티지 시리즈를 출시하여 전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는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가루이자와의 위스키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가격을 책정했으나 점차 재고가 떨어지면서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영국 애버딘 대학에서 국제무역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던 대만 출신의 에릭 황(Eric Huang)은 공부보다는 스카치 위스키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Scotch Malt Whisky Society”라는 협회에 가입해 있었는데, 당시 대만 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회장의 눈에 들어 그곳에 협회를 설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받는다. 대만의 사업가가 된 그는 이후 가루이자와 위스키의 놀라운 잠재력을 경험하게 되면서 2011년 “Number One Drinks Company”로부터 남은 25개의 오크통 중 20개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그는 남은 재고 대부분을 교묘한 마케팅과 함께 시장에 높은 가격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2015년 건물이 해체되기 전 증류소의 일반 공개가 마지막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설비는 미요다쵸의 경매에 출품되어 나카무라 다이코(中村大航)에게 매각되면서 가이아 플로우 시즈오카(ガイアフロー静岡) 증류소의 설비 중 하나로 가동되고 있다. 2016년 완전히 철거되면서 현재 가루이자와 증류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Review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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