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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네디안 위스키의 계보 I : 존 몰슨(John Molson)

by Y's Spirits Archive 202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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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Molson

 

 17세기 초, 유럽민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한 이래로 마을이 생기면서 정착지를 이루었고, 정착지는 다시 더 큰 규모의 식민지로 이어졌다. 특히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퀘벡 지역을 두고 영국과 프랑스가 이를 차지하기 위해 7년 동안 싸우기도 했다. 1763년,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영국의 완전한 식민지가 된 캐나다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주했으며 거기에는 고향에서 핍박을 받던 아일랜드인들과 스코틀랜드인들도 존재했다.

 

 옛 고향에서 주로 보리(Barley)를 사용해 위스키를 만들었던 이들은 풍요로운 이 새 고향에 저렴한 곡물들이 풍부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보리의 양을 줄이는 대신 캐나다의 비옥한 땅에서 재배되는 밀(Wheat)을 활용하여 본국에서 사용하던 증류 기술을 통해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누군가가 이 밀 위스키에 소량의 호밀(Rye)을 첨가하면서 더 강한 풍미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새로운 스타일의 위스키를 비합법적으로 생산하는 몇몇 생산자가 나타났다.

 

 1763년, 영국 링컨셔주에서 태어난 존 몰슨(John Molson)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면서 친척들에게 위탁 양육되었다. 18세가 되던 해에 그는 심하게 물이 새는 배를 타고 퀘벡에 위치한 몬트리올로 이주했는데, 그곳에서 맥주 양조를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양조장의 파트너가 되었고, 1785년에는 그 양조장의 주인이 되었다.

 

 1786년, 그는 "Molson Brewery"를 설립하면서 주류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는 캐나다에서 맥주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첫 번째 회사 중 하나였으며, 이후 캐나다 맥주 및 주류 산업의 기반을 닦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788 ~ 1800년 사이에 존 몰슨의 양조 사업은 가파르게 성장하여 퀘백주가 둘로 분할된 로워 캐나다(Lower-Canada)에서 가장 큰 사업체를 보유하게 된다. 1799년, 그는 주류 상인으로서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된 스카치 위스키를 캐나다에 처음 소개했으며 1801년에는 그의 몬트리올 양조장에서 캐나다 최초로 증류기를 가동했다. 그전까지 많은 캐나다인들은 럼과 사이더 그리고 맥주를 마셔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위스키는 선두를 차지하게 되었다.

 

 1817 ~ 1820년 사이에 발생한 경제 붕괴에 대응하여 그의 아들인 토마스(Thomas)는 양조장 대신 캐나다에서 산업적으로 불모지에 가까웠던 대규모 증류 사업에 참여하도록 건의한다. 왜냐하면 당시 알코올은 곡물을 화폐화하는 주요 형태였으며 스카치 위스키 공급이 부족해지자 캐나다에 거주하던 영국인들은 캐나다 위스키를 갈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1820년에서 1866년까지 몰슨 가문을 위시로 하는 여러 건의 파트너쉽은 캐나다에서 가장 거대한 증류소 설립으로 이끌었지만 몰슨 가문 자체는 위스키보다는 맥주에 더 집중했고, 이후에도 주로 맥주 브랜드로 유명세를 떨쳤다.

 

 1850년경까지 "Hiram Walker & Sons"를 비롯한 캐나다의 여러 증류업체들은 다소 원시적인 팟 스틸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후에는 프랑스의 아르마냑 지방에서 아르마냑(Armangac)이라는 브랜디를 증류하는 데 사용하는 컬럼 스틸을 도입하여 생산한 증류액을 숯과 돌 그리고 펠트(Felt)가 겹겹이 쌓여 있는 통에서 여과시켰다. 이 공정은 작은 틈새가 증류주에 잔존하는 퓨젤 성분을 가두는 역할을 했다.

 

 1868년 이후로 캐나다의 증류업체들은 두 번째 컬럼인 정류 컬럼(Rectifying Column)에서 응축하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서 숯 여과 공정이 사라지고 현대적인 증류 공정의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보다 정교한 정류 과정이 수행되면서 거칠면서도 풍미가 있는 옛 위스키를 기억하던 사람들은 실망하기 시작했다.

 

 1890년 이후 캐나다의 증류업체들은 철도와 배를 통해 수입된 미국산 옥수수를 활용하여 고도로 정제된 증류액을 생산했고, 이 증류액을 오크통에 최소 2년 이상 숙성하면서 캐네디언 위스키 스타일의 원형이 되었다. 밀과 호밀이 주가 된 기존의 스트레이트 위스키(Straight Whiskey)는 점점 사라져 갔음에도 불구하고, 100% 호밀 위스키는 블렌딩에 있어 필수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캐나다의 국가적 위스키 유형을 설명하는 데 있어 호밀 위스키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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