ニッカ (Nikka)
1894년 타케츠루 마사타카(竹鶴政孝)는 에도시대 중기서부터 타케츠루 슈조(竹鶴酒造)를 창업하여 사케를 양조해 오던 가문에서 4남 5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오사카의 공업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서 화학 및 양조 교육을 받아 가업을 이어갈 준비를 했으나, 세츠 슈조(摂津酒造)의 아베(阿部) 사장으로부터 스코틀랜드로의 유학을 권유받았다. 그는 히로시마 중학교 선배의 추천도 있었기 때문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와인 양조장 견학을 위해 태평양 항로로 미국 대륙을 횡단했다. 1차세계대전의 발발로 뉴욕에 발이 묶이게 되자 비자가 만료되었다. 그는 대통령에게 직접 전보하여 비자를 발급받는 대담함을 보여주었고, 대서양을 횡단하여 잉글랜드의 리버풀항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에딘버러 대학교로 갔지만, 이후 글래스고 대학교로 옮겨 청강생 자격으로 수업을 듣는다.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아내가 될 리타를 만났으며, 수업을 듣는 틈틈이 “위스키와 스피릿의 제작”이라는 네틀턴 박사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의 책에서 영감을 받은 타케츠루는 스페이사이드 북부에 위치한 도시인 엘긴(Elgin)으로 직접 가서 비싼 돈을 치르며 수업을 들었지만, 비용 문제로 그만두고 근처의 롱몬(Longmorn) 증류소에서 고된 일을 맡아 일주일간 일하게 된다. 이때 배운 위스키 생산 과정은 모두 기록되어 일본에서의 증류소 설립에 큰 도움이 되었다.
글래스고로 돌아온 그는 보네스(Bo’ness) 증류소에서 코페이 스틸(Coffey Still)을 경험한다. 1824년 아이네아스 코페이(Aeneas Coffey)가 개발한 코페이 스틸은 발원지인 아일랜드를 비롯해 미국과 서인도제도에서 등지에서 먼저 사용되었다가, 19세기 중반부터 그레인 위스키 증류소를 중심으로 최신 설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연속식 증류기는 팟 스틸에 비해 10배 더 많은 생산량과 더 높은 알코올 그리고 저렴한 비용으로 증류액을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선호되었다. 당시 보네스 증류소는 이 코페이 스틸을 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용하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타케츠루는 이때의 경험을 잊지 않고 후에 일본으로 코페이 스틸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리타와의 결혼을 마친 타케츠루는 스승이었던 윌슨 교수가 캠벨타운 증류소에서 일하고 있던 이네스 박사의 제자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냐 권유했다. 그는 몇 년간 헤이즐번(Hazelburn) 증류소에서 이네스 박사와 일하면서 과학적 방식의 블렌딩을 배울 수 있었다. 이 방법론은 후에 타케츠루가 닛카를 창업하여 위스키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20년에 일본으로 돌아온 타케츠루는 곧바로 위스키를 생산할 계획을 세웠지만, 당시 1차세계대전으로 인한 위스키 시장 불황과 세츠 슈조의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사업이 계속 지연되었다. 그는 잠시 오사카의 모모야마 중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 자체적인 위스키 증류소를 설립하기 위한 부지와 증류소를 운영할 관리자를 찾고 있던 토리이 신지로(鳥井信治郎)는 위스키를 만들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던 타케츠루를 만나 10년 동안 자신을 위해 일하는 대가로 증류소 설립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과 고액의 급여를 약속했다. 1923년 타케츠루는 스코틀랜드의 기후와 유사한 홋카이도를 증류소 부지로 추천했으나, 토리이는 일본의 고대 수도였던 교토 남서쪽 외곽과 오사카부 동부에 위치한 시마혼마치 사이의 좁은 계곡에 야마자키(山崎) 증류소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일본은 단식 증류기인 팟 스틸을 제작해본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증류기부터 공장의 설계까지 모든 작업을 타케츠루가 맡게 되었다.
야마자키 증류소의 초대 공장장이 된 타케츠루는 스카치 위스키와 유사한 풍미를 가진 위스키를 생산하고자 했지만, 만족할만한 품질이 나오지 않아 제품 출시가 매우 늦어졌다. 비용 문제로 토리이는 그에게 바로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을 주문했고, 1929년 산토리 시로후다(サントリ白札)가 출시되었다. 특유의 피트감이 있어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이 제품은 외면받았으며, 판매량이 저조했다. 이것을 계기로 토리이와 타케츠루의 관계는 멀어지게 되었다. 1933년 10년간의 계약을 마친 그는 토리이의 코토부키야(寿屋)를 나왔다.
1934년 타케츠루는 홋카이도(北海道) 요이치군(余市郡) 요이치쵸(余市町)에 다이니혼 카쥬 카부시키카이샤(大日本果汁株式会社), 약칭 닛카(ニッカ)를 창업하고 요이치(余市) 증류소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가가증권(加賀証券)의 가가 마사타로(加賀正太郎)가 닛카에 투자하여 대주주가 되었으며, 타케츠루는 창업자로서 전무로 불렸다.
처음에는 요이치 마을 주변의 특산품이었던 사과를 원료로 하여 사과 주스, 사과 와인 등을 생산했다. 하지만 그의 여전한 고집으로 과즙 100% 주스 밖에 출하하지 않았기 때문에 판매량은 저조했다. 남아도는 사과 주스를 원료로 하여 브랜디 및 단맛이 나는 사과주를 생산하기로 결정했지만, 브랜디 생산 시기 외에 남는 시간을 아까워하여 보리를 구매하고 위스키도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1936년에 위스키 생산 면허를 취득하고, 193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40년 당시 일본 내에서 스카치 위스키의 최대 소비자였던 제국 해군이 전쟁으로 인해 수입이 끊기자, 자국 위스키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덕분에 전시 제한에 상관없이 보리를 우선적으로 할당받을 수 있게 되어 사업이 지속될 수 있었다. 1943년 닛카의 사장으로 취임한 타케츠루는 고품질의 닛카 위스키를 고집하였기 때문에 저품질의 저가격 제품을 판매하지 않아 경영에 어려움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1950년부터 저품질의 3급 위스키를 출시했다.
1952년 회사명을 닛카 위스키 카부시키카이샤(ニッカウヰスキー株式会社)로 변경하고, 본사를 도쿄로 이전한다. 같은 해에 미나토구에 병입 공장을 설립했다. 당시 위스키는 출하시에 과세되기 때문에, 운송주의 파손분에 대해서는 과세를 막기 위해서라도 가장 큰 소비지에 공장을 필요로 했다.
1954년 건강상의 문제를 안고 있었던 가가 마사타로는 소유한 주식의 절반을 아사히 맥주(アサヒビール)에 매각했다. 당시 닛카는 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을 거절당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아사히 맥주의 증자로 고비를 넘겼다. 그럼에도 회사에 대한 경영 개입은 거의 없었다. 같은 해에 2급 위스키인 마루토닛키(丸壜ニッキー)를 출시하여 매출이 1년 만에 2배로 늘었다.
1959년 아사히 맥주의 증자 지원을 받고 니시노미야 공장(西宮工場)을, 1962년에는 닛카에 그레인 위스키를 공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아사히 슈조(朝日酒造)를 설립했다. 아사히 슈조는 이후 닛카 위스키에 합병되었으며, 요이치 증류소를 설립했을 때부터 생산해 오던 사과 와인과 사과 주스는 히로사키 공장(弘前工場)으로 이관되었다.
1964년 일본에서 생산된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혼합한 2급 위스키인 하이닛카(ハイニッカ)를 출시했으며, 다음 해에는 1급 위스키인 블랙닛카(ブラックニッカ)를 출시했다. 당시 업계를 선두 하던 산토리도 블렌디드 제품을 출시하여 위스키 시장에 대한 경쟁이 일어났다. 그 해에 타케츠루 마사타카의 아들인 타케츠루 타케시(竹鶴威)가 요이치 증류소의 공장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닛카 위스키의 마스터 블렌더와 사장을 거쳐 퇴임하고, 그 자리를 사토 시게루(佐藤茂生)에게 물려주었다.
1969년 타케츠루가 센다이 공장의 새로운 부지 견학을 위해 미야기현으로 왔을 때, 현재 부지에 있던 닛카와가와(新川川)의 흐름을 보고 그 자리에서 증류소 부지를 확정했다. 새로이 설립된 미야기쿄(宮城峡) 증류소는 요이치 증류소보다 더욱 현대화된 설비를 도입하여 효율적인 생산을 시작했다. 요이치를 통해 아일라 위스키를, 미야기쿄를 통해 하이랜드 위스키를 모방하고자 했던 타케츠루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1979년 사망했다.
1985년 닛카 프롬 더 배럴(フロムザバレル)를 출시했다. 이것은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혼합한 후, 몇 달간 배럴에서 숙성하는 기법(Marrying)을 사용한 블렌디드 위스키다. 1989년 닛카는 폐쇄되었던 스코틀랜드의 벤 네비스(Ben Nevis) 증류소를 인수하여 생산량의 절반을 일본으로 가져와 자사 블렌디드의 키몰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9년 니시노미야 공장의 그레인 위스키 생산 설비가 미야기쿄 증류소로 이전되었다. 당시 니시노미야의 공장장을 역임했던 야마시타 히로(山下弘)는 2010년 닛카 위스키의 대표 이사이자 마스터 블렌더로 취임했다. 2011년 아사히 맥주가 타케츠루 일가의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타케츠루 마사타카의 손자인 타케츠루 코타로는 20년간 닛카 위스키에서 근무했으나, 현재는 주류업계를 떠났다.
2001년에 아사히 맥주는 닛카 위스키의 주식을 모두 인수하여 자회사로 완전히 편입했으며, 2011년 아사히 그룹 홀딩스(Asahi Group Holdings)로 회사명을 변경하여 지주회사가 되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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