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nidad & Tobago
토착민인 아라와크족과 카리브족이 거주하던 트리니다드 섬은 1498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 구세계에 처음 알려졌다. 1532년 섬에 정착촌을 세우려는 스페인의 첫 번째 시도는 엘도라도를 발견하고 노예무역을 통제하려는 안토니오 세데뇨(Antonio Sedeño)의 지휘 하에 시작되었다. 하지만 1592년에 최초의 식민지를 설립할 때까지 영구적인 정착지를 형성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1687년 ~ 1700년 사이 트리니다드에 여러 선교부가 설립되었으며 그중 4개만이 18세기 내내 살아남았다. 선교사 부족으로 인해 종종 기독교인의 지시 없이 미사가 진행되었다. 18세기말 프랑스 혁명의 격변으로 인해 프랑스 경작자와 그들의 노예가 섬에 정착하기 시작했을 때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사탕수수와 코코아를 기반으로 농업 경제를 최초로 구축한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영국의 통치는 1797년 랄피 아베크롬비경(Sir. Ralph Abercromby)이 트리니다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스페인은 싸우지 않고 항복했고 트리니다드는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인구와 스페인 입법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메이카나 바베이도스와 같이 전형적인 영국의 설탕 식민지가 되었다.
물론 설탕이 있는 곳에는 럼이 있었지만 석유의 경제적 중요성이 증가하고 설탕 가격이 폭락하면서 많은 설탕 공장과 50여 개의 럼 증류소가 모두 문을 닫았다. 여러 인수 & 합병을 현재는 앙고스투라(Angostura) 증류소만이 살아남았다.
Caroni Distillery
길이가 40km인 카로니 강은 동서로 흐르며 수세기 동안 트리니다드섬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고 무역과 운송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 지역의 비옥한 토양과 열대 기후는 트리니다드의 사탕수수 재배와 럼 생산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918년경 카로니 평원의 드넓은 사탕수수 농장 중심부에 동명의 증류소를 설립되었다. 카로니 증류소는 사탕수수 농장과 설탕 공장이 인접해 있어 신속하게 처리 & 가공된 신선한 당밀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1936년 트리니다드의 영국 식민 당국 소유였던 카로니 증류소는 영국의 다목적 대기업인 "Tate & Lyle"에 인수되어 "Caroni Ltd."로 탈바꿈했다. 이는 트리니다드에서 상당한 규모의 설탕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기반으로 사용되었다. 회사는 여러 사유지를 인수 & 합병하며 몸집을 불려나갔다.
- 1937 ~ Waterloo Estate
- 1955 ~ Esperanza Esate
- 1961 ~ Lodge Estate
- 1962 ~ Madeline Estate
거대한 규모의 회사로 성장한 "Caroni Ltd."는 효율적인 발전과 획기적인 개발을 위해 사탕수수 펄프(Bagasse)의 산업적 사용과 현장 작업의 기계화를 진행했다. 또한 카로니 노동자를 위한 이익 공유 프로그램과 연금 제도도 도입되었다.
1962년 트리니다드 & 토바고가 독립을 승인받고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EEC)에 합류한다.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 가입을 위해 EEC가 내건 조건 중 하나는 설탕 수입 규제였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국내 설탕 산업에 대한 과도한 경쟁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전 식민지에서의 설탕 수출에 대한 가격 상한선을 포함한 규제를 원했다. 때문에 영국 기업인 "Tate & Lyle"은 트리니다드 설탕 산업의 수익성이 점차 악화되어 갔다.
1970년 트리니다드 정부가 보다 내향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Tate & Lyle"의 카로니 증류소 지분 51%를 매입했다. 회사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상황에 따른 계속된 압박 탓에 나머지 49% 지분을 정부에 완전히 매각했다.
100% 정부 소유가 된 "Caroni Ltd."는 "Rum Distillers of Trinidad & Tobago Ltd."의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1976년 "Tate & Lyle"은 망브레(Manbré)와 가르통(Garton)과 같은 회사를 차례로 인수하여 영국에서의 설탕 정제 사업에 대한 사실상 독점권을 갖게 되었으며 동시에 카로니와의 경쟁이 금지되었다.
설탕 위기로 인한 수익성 악화와 유럽경제공동체에 의한 해외 수출 제한 그리고 영국 해군의 럼 배급 전통 폐지로 인해 럼 생산량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1980년대부터 카로니는 다양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탕수수만이 아닌 감귤류와 쌀 그리고 가축도 기르기 시작하여 내수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이는 수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계속해서 적자를 발생시켜 정부가 손실액을 채워 넣어야 했다. 트리니다드 정부는 결국 최종적으로 회사를 청산하기로 결정한다. 2002년 지주회사인 "Rum Distillers of Trinidad & Tobago Ltd."를 "Trinidad Distillers Ltd." 산하의 앙고스투라(Angostura) 증류소가 인수하려 했으나 카로니 창고에 보관된 자산의 가치에 대해 정부와의 분쟁이 발생해 거래가 무산되었다.
1년 후 지역에서 설탕 생산이 중단될 것이라는 좋지 않은 전망으로 카로니 증류소가 폐쇄되었다. 트리니다드 정부는 2003년 7월 31일 카로니를 최종적으로 청산하여 약 9,000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은 트리니다드의 주립 은행이 운영하는 펀드가 퇴직금을 지불하도록 제안받았는데 너무 낮은 수익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보다 가장 큰 문제는 카로니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던 트리니다드의 모든 사람들의 생계가 곤란해졌다는 것에 있었다. 이러한 여파로 트리니다드에 남은 마지막 럼 생산자인 앙고스투라 증류소는 더 이상 충분한 설탕을 공급받지 못하자 다른 카리브해의 섬들로부터 당밀을 벌크로 수입해야만 했다.
2004년 이탈리아 회사인 "Velier"의 비범한 CEO 루카 가르가노(Luca Gargano)가 사진 촬영을 위해 트리니다드로 여행을 갔으며 일부 증류소에서 거래를 중개했다. 그때 발견한 것이 폐쇄된 카로니 증류소 창고에 남겨진 배럴들이었다. 야심 가득하고 럼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던 그는 카로니 럼의 잠재력을 알아본 것이다. 트리니다드 경매를 통해 창고에 보관된 약 18,000개의 카로니 배럴 대부분을 "Trinidad Distillers Ltd."가 인수했지만 가장 중요한 몫은 "Velier"에게 돌아갔다. 몇몇 배럴은 "La Maison du Whiksy"와 "Bristol Spirits"의존 바렛(John Barrett)이 구입했다.
루카는 가이아나의 "Demerara Distillers Ltd."와 계약하여 카로니 배럴들을 가이아나에 위치한 DDL 소유의 창고로 가져가 몇 년 동안 열대 숙성을 진행했다. 존 바렛은 구입한 배럴들을 영국에 위치한 자사의 숙성고로 가져가 대륙 숙성을 진행했다. 열대 숙성은 럼의 표현력을 더욱 묵직하고 풍부하게 만들지만 증발로 인해 그 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루카는 모든 카로니 배럴들을 유럽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럼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 넣어 숙성 과정을 동결했다. 이후 구분하고 분류하여 뛰어난 특성을 가진 배럴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는 유럽 전역에서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해 "Tasting Gangs"라고 부르는 그룹을 형성했으며 여기서 놀라울 정도로 맛이 좋은 배럴들을 선별했다.
2005년 벨리에는 100% 열대 숙성으로 이루어진 빈티지 & 싱글 캐스크 & 캐스크 스트렝스 병입 카로니 럼 8개를 출시했다. 매우 중요한 데메라라 스켈든(Skeldon)을 포함하는 DDL의 협력과 함께 말이다. 이는 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카로니가 보유하고 있는 전설적인 지위의 기원이 된 획기적인 해였다.
2008년 존 바렛을 위시한 브리스톨 스피리츠는 벨리에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100% 열대 숙성의 카로니 럼을 출시했으나 이후에는 알코올 도수를 40 ~ 46%로 희석하여 병입 하기 시작했다. 다른 독립 병입자들도 트리니다드 경매로부터 일부 카로니 배럴을 구입했으나 이것은 궁극적으로 질적인 차이를 보였다. 벨리에와 브리스톨 스피리츠는 거의 독점적인 열대 숙성을 통해 헤비 한 스타일의 럼을 병입 한 반면 다른 병입자들은 대부분 열대 & 대륙의 부분 숙성으로 블렌디드 또는 라이트한 스타일의 럼을 병입 한 것이다.
크게 인기가 있지 않았던 럼 장르는 2015년 전후로 폭발적인 반응과 컬트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며 카로니 럼의 가격은 아주 고가에 형성되었다. 오늘날 카로니 럼에 대한 수요는 그 어느 때보다 높고 이에 편승하려는 사람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 카로니 증류소는 1918년에 주철로 된 팟 스틸(Iron Pot Still)로 처음 럼을 증류했다고 알려져 있다. 1943년에 설치된 우든 코페이 스틸(Wooden Coffey Still)은 1945년에 그 전의 증류기와 함께 전체를 구리로 보완했다.
- 1955년에 인수했던 에르페란자 에스테이트(Esperanza Estate)에서 싱글 컬럼 스틸(Single Column Still)을 가져와 1957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 1979년 쿼드러플 컬럼 게브 헤르만 스틸(Quadruple-Column Gerb Herman Still)이 설치되어 1980년에 시운전되었다.
- 1984년에 들어서 카로니에서 가장 오래된 주철 팟 스틸과 우든 코페이 스틸은 폐기되었고 코퍼 팟 스틸(Copper Pot Still)과 "Blair Campbell & McLean Ltd."의 트윈 컬럼 스틸(Blairs Twin-Column Still)로 대체되었다.
증류소 초기에는 효율적이고 조금 더 가벼운 증류액을 생산하는 컬럼 스틸과 더 복잡하고 무거운 증류액을 생산하는 팟 스틸의 두 가지 유형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로 당밀 기반의 무거운 주질을 포함하는 팟 스틸 럼을 생산했다. 이 무거운 주질의 럼은 높은 수준의 에스테르 함량을 가지고 있어 영국 해군에 배급되는 럼에 핵심재료로 사용될 수 있었다. 원액은 주로 블렌더에게 판매되었으며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수출되지는 않았다.
후기 카로니의 증류 과정은 다른 럼 생산자들과 크게 달랐다. 특히 발효 과정에서 이러한 차이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자메이카 럼과 유사하게 카로니는 에탄올과 물 외에도 발효 과정에서 동족체로 알려진 물질을 생성했다. HTR(Heavy Type Rum)을 생성하고 맛을 내는 가장 중요한 성분 중 하나인 동족체는 타르, 등유, 탄 고무와 같은 매우 더티한 향조를 불러일으켜 럼 특유의 열대 과일 뉘앙스와 시너지를 낸다.
LTR(Light Type Rum)이라고 하는 가벼운 스타일의 카로니 럼은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증류액에서 동족체를 분리했기 때문에 더티한 향이 매우 희미하다. 이러한 유형은 대부분 국내 시장에서 판매되는 블렌드로 사용되었다.
카로니의 증류액이 몇 %의 알코올 도수로 컷팅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통입 도수의 경우 약 80%로 알려져 있다. 럼의 엔젤스 셰어가 관세 및 세무 당국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높았기 때문에 카로니 럼은 5년의 기간 동안 최대 19.5%까지 제한을 두어 수익성 있게 운영되었다. 숙성을 위한 배럴은 주로 미국산 Ex-버번 배럴이 사용되었다.
Review
Reference
'Rum > Distillery & Brand'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리니다드 디스틸러스 리미티드(T.D.L) & 앙고스투라(Angostura) (0) | 2022.12.08 |
---|---|
텐 케인(Ten Cane),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트리니다드의 럼 브랜드 (1) | 2022.12.07 |
사반나(Savanna), 하이 에스테르 럼의 계보를 잇는 레위니옹 럼 증류소 (0) | 2022.08.20 |
포스퀘어(Foursquare), 럼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 (0) | 2022.08.09 |
마운트 게이(Mount Gay),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 바베이도스 럼 생산자 (0) | 2022.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