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lenlivet Distillery
그램피언(Grampian) 산기슭의 두 개울이 합류하여 형성된 리베트 강(Rivet River)은 북쪽으로 약 9마일을 흐르다가 스페이강(Spey River)의 지류인 아벤 강(Aven River)으로 흘러들어 간다. 이 지역에 살았던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그곳을 게일어로 리비트라고 불렀다. 리벳 계곡은 도로로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외진 곳에 위치했으며 매우 춥고 건조했기 때문에 불법적인 증류가 만연했다.
그 중에서도 18세기에 후반 “Auchorachan”이라는 농장을 운영했던 윌리엄 고든(William Gordon)이 위스키 증류 및 소매를 통해 많은 재산을 쌓았다고 처음 기록되어 있다. 글렌리벳(Glenlivet)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알려진 이곳의 위스키에 대한 명성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리벳 계곡에 모여들게 하여 19세기 초까지 약 2,000명의 인구와 200개의 작은 증류기가 존재했다고 한다. 여기서 불법적으로 증류된 위스키는 소비세법이 적용되지 않아 밀주업자들이 작은 통에 담아 남쪽으로 운반하여 비교적 저렴한 값에 판매되었다.
앤드류 스미스(Andrew Smith)는 군인과 세관원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리벳 계곡의 어퍼 드러민(Upper Drumin) 농장에 정착하여 위스키를 생산했다. 그의 아들 조지 스미스(George Smith)는 아버지로부터 위스키를 제조하는 법을 배우고 사업을 물려받았으며, 오직 몰트만을 사용하여 팟 스틸로 천천히 증류한 글렌리벳 위스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로우랜드 증류소들의 위스키보다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위스키가 되었다.
임대료 문제로 이 불법적인 행위를 눈감아주었던 알렉산더 고든 공작(Duke Alexander Gordon)은 밀수업자들이 세관원들과 더 격렬한 싸움을 벌이자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823년 의회에서 소비세법이 통과되면서 하이랜드에서의 위스키 생산이 합법화되자 공작은 이후의 불법 증류에 대해서는 기소가 될 것이라고 공포했다. 많은 사람들이 쫓겨났지만 일부는 공식적으로 증류 면허를 취득하여 증류소를 설립했다. 조지 스미스는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여 최초의 합법적인 증류업자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로우랜드 증류소들과 경쟁하게 된 하이랜드 증류소들은 그 규모와 생산량에 있어서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리벳 계곡에 위치한 많은 증류소들이 폐쇄되었고 조지 스미스의 증류소도 실질적 파산 상태까지 이르렀다. 다행히 지역 경제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은 알렉산더 고든이 조지 스미스에게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826 ~ 1827년 사이에 조지 스미스는 약 1,340갤런의 알코올을 생산했다고 알려져 있다.큰 성공을 거둔 조지 스미스는 여러 농장을 인수하여 몸집을 불려나갔다.
- Castleton Farm 1837 ~
- Nevie Farm 1838 ~
- Minmore Farm 1839
- Cairngrom Distillery
조지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남부에서 자신의 위스키를 위한 새로운 시장을 찾고 싶어 했던 "Auchorachan"의 캡틴 그란트(Captain Grant)는 에딘버러의 대리인 다니엘 니콜슨(Daniel Nicholson)과 계약하여 공격적인 캠페인에 들어갔다. 자신의 증류소가 발전하는 것에 매우 만족한 그는 다른 농장을 인수하여 비슷한 유형의 글렌리벳 위스키를 만들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더군다나 1854년 증류소가 소비세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약 300파운드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어 큰 위기에 처했다. 더 이상의 임대 계약을 포기한 캡틴 그란트는 은퇴하고 증류소는 폐쇄되었다. 그의 증류소는 조지 스미스의 후계자인 스미스 그란트(Smith Grant)에게 넘어갔다.
1854년 합법적인 증류소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스미스 그란트의 글렌리벳 증류소는 민모어(Minmore) 및 네비(Nevie)와 손을 잡고 델나보(Delnabo) 부지에 새로운 증류소를 설립했다. 기존의 드루민 증류소는 화재로 전소되고 델나보 증류소는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렸기 때문에 모두 폐쇄하고 1859년 민모어에 위치한 농장 부지로 증류소를 완전히 이전했다. 다음 해에 스미스 그란트는 민모어 증류소의 공식 명칭을 글렌리벳으로 변경했다. 여기서 생산된 보다 가벼운 스타일의 위스키는 블렌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로우랜드의 블렌더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된다.
1871년 스미스 그란트의 뒤를 이어 조지 스미스의 아들 존 고든 스미스(John Gordon Smith)가 사업을 물려받았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글렌리벳의 이름을 표방하는 많은 증류소들이 있었기 때문에 존은 이들을 고소했다. 3년의 분쟁 끝에 나온 타협안으로 기존에 “Smith’s Glenlivet”이라 업계에서 공공연히 불리던 명칭을 더 글렌리벳(The Glenlivet)이라 부를 수 있게 되었고 그 이외의 증류소에서는 정식 명칭 뒤에 "-Glenlivet"이라는 문구를 넣어야 했다.
1890년 대화재로 인해 증류소 대부분이 소실되는 재앙이 발생했다. 존은 재건축과 동시에 부지를 확장하고 2개의 증류기를 추가로 설치했다.
1921년 존의 두 번째 조카 빌 스미스 그란트(Bill Smith Grant)가 사업을 이어받아 증류소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과 미국 대공황을 무사히 거치고 1933년 금주령이 완전히 폐지되면서 미국에서의 싱글 몰트 시장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의 글렌리벳을 대표적인 싱글 몰트 브랜드의 반열로 올린데 있어 빌의 헌신은 대단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에 들어서면서 인력 부족과 보리 수급 문제로 인해 잠시 문을 닫게 되었다.
1952년 글렌리벳의 모회사 “George & JG Smith Ltd.”와 글렌 그란트(Glen Grant)의 모회사 “J. & J. Grant”가 합병되면서 “Glenlivet & JG Smith”가 설립되었다. 이후 “Glenlivet & Glen Grant Distillers Ltd.”로 변경된 회사는 롱몬과 벤리악 증류소를 소유한 “Longmorn-Glenlivet Distilleries Co.” 및 블렌더인 “Hill Thompson & Co. Ltd.”와 힘을 합치면서 “The Glenlivet Distillers Ltd.”가 설립되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스코틀랜드의 싱글 몰트 위스키의 절반을 차지했던 글렌리벳의 명성은 1960년대에 들어서 끝났다. 1978년 소유주인 시그램(Seagram) 그룹은 4,600파운드를 지불하여 최대 주주가 되었다. 2001년 시그램 그룹이 분할되면서 페르노리카(Pernod Ricard)가 스카치 위스키 사업부를 인수하여 시바스 브라더스(Chivas Brothers)로 이름을 변경하고 자회사로 편입했다. 글렌리벳은 페르노리카에게 글렌 그란트는 캄파리 그룹에게 돌아갔다. 위스키 수요 증가의 기대감으로 글렌리벳은 바로 옆에 두 번째 증류소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2010년 마스터 디스틸러인 앨런 윈체스터(Allan Winchester)의 지도하에 대규모 확장이 이루어졌다.
글렌리벳은 “Josie’s Well”을 주 수원으로 하며 파이프를 통해 물을 끌어와 사용한다. 몰트의 경우 여러 몰팅업체로부터 논 피티드 몰트를 공급받는다. 배치 1회당 약 13톤의 몰트가 포르테우스(Porteus) 분쇄기에 의해 제분된다. 각각의 증류소에 약 13.5톤 용량의 당화조가 있다. 제분이 끝난 몰트는 당화조로 펌핑되어 뜨거운 물과 혼합된 후 당화 과정을 거친다.
- Crisp Maltings
- Boortmalt
- 13.5T Briggs Type Stainless Steel Mash Tun x2
당화 과정이 마무리된 맥아즙(Wort)은 32개의 발효조 중 하나에 투입된다. "Mauri Liquide Distiller’s Yeast"를 투입하여 약 48 ~ 54시간 동안 발효되며 알코올 도수 약 7 ~ 8%의 워시가 생성된다. 목재로 된 발효조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발효조보다 관리하기 어렵지만 여러 균의 활동을 촉진시켜 독특한 꽃향기를 부여한다.
- 25,000L Oregon Pine Washback x16
- 25,000L Stainless Steel Washback x16
발효가 끝난 워시는 14쌍의 구리로 된 팟 스틸에서 이중 증류된다. 첫 번째 워시 스틸에서 처음 증류되면서 더 높은 알코올 항량을 지닌 증기가 생성된다. 냉각되고 응축된 후에 로우 와인(Low Wine)이라 불리는 증류액이 된다. 이 증류액은 스피릿 스틸에서 다시 증류되어 냉각되고 응축된다. 마스터 디스틸러가 원하는 사양에 맞춰 초류와 본류 그리고 후류 세 부분으로 분리한다. 스피릿 세이프(Spirit Safe)에 들어가는 본류는 알코올 도수 약 68 ~ 70%에 수렴한다. 이 순백색의 증류액을 뉴 메이크 스피릿이라 부른다. 연간 약 2,100만 리터의 알코올을 생산한다.
- 15,000L Lantern Type Wash Still x14 / Steam / Shell-and-Tube
- 9,500L Lantern Type Spirit Still x14 / Steam / Shell-and-Tube
각 팟 스틸의 중간 부분은 알코올과 구리 간의 접촉을 최대한 많이 허용한다. 또한 길고 좁은 모양의 목 부분은 알코올 증기의 가장 가벼운 부분만을 상단에 도달하게 하여 보다 과실향이 풍부하고 가벼운 주질의 스피릿을 생산코자 한다.
뉴 메이크 스피릿은 증류소 인근 키스(Keith) 마을에 위치한 시설로 옮겨져 가수 된 후 원하는 사양에 맞게 다양한 오크통에 통입된다. 주로 아메리칸 오크와 유러피안 오크를 사용한다.
- Ex-Bourbon Cask
- Ex-Sherry Cask
- Ex-Cognac Cask
- Ex-Wine Cask
- French Oak
통입이 끝난 오크통은 다시 증류소 부지에 위치한 더니지(Dunnage) 방식의 숙성고 중 하나로 옮겨진다. 현장에는 약 60,000여 개의 오크통이 있으며 나머지는 스페이사이드 전역에 위치한 시바스 브라더스의 숙성 시설에 안치된다. 글렌리벳 위스키는 페르노리카가 소유한 블렌디드 위스키 브랜드(Chivas Regal, Royal Salute) 등에 블렌드로 사용되며 일부는 싱글 몰트 위스키로 병입 된다. 병입 공정은 시바스 브라더스가 소유한 시설에서 이루어진다.
Review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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